중국인을 뙈놈, 일본인은 쪽바리라고 무시하는 동포들을 미국땅 뉴욕에서도 가끔 접하게 된다. 워낙 오래 동안 이들 나라에게 침략을 당해온 한 민족의 후예로 한풀이를 한다고 치부를 해본다.
그러나 이런 편견으로 단결을 해도 시원치 않은 이 시점에서 동양인 중에 가장 오래된 두 민족을 무시하거나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중국계 이민의 역사와 미래를 지난회에 잠깐 언급했지만 중국인들이 미국에 진출한 시기는 1820년대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1869년 대륙횡단 철도 부설(敷設)이전에 중국 이민들의 역사는 찾기가 매우 어렵다. 어째든 유럽인 노동자들도 꺼리는 대륙횡단 철도 (Transcontinental Railroad) 건설에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투입이 되었고 수많은 인명도 희생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869년 5월 10일 미 대륙을 관통하는 대륙횡단 철도가 개통 되었다. 이 철도 건설에 크게 공헌한 중국인 노동자의 희생을 높이 평가한 미국 정부가 중국인 기념일 제정에 나섰다.
그러나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187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백인 폭도들이 중국인들을 “Yellow Peril 즉 황색 역병”이라 매도하며 21명을 살해하고 수 백 명의 중국 이민을 공포에 몰아넣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현재 라티노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논리와 같은 이유였다.
이런 반 중국인 정서와 폭행에 미국 정부가 중국인을 보호하기는 커녕 오히려 1882년 중국인 이민 제외법 (Chinese Exclusion Act of 1882)를 제정하기에 이른다. 특정 인종, 민족을 찍어서 미국 이민, 시민권 발급에서 제외하겠다는 법안인데 이는 21세기 문턱 2008년 현재 미국 역사 300년을 되돌아볼 때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 중국인 이민 제외법에 대한 당시 무지한 미국인들의 시각은 일본인이 되었든 한국인이 되었든 모든 동양인들은 한 통속으로 취급되어 똑같이 적용되었고 이로 인해 열심히 일해 모은 재산을 폭도들에게 빼앗기기 일쑤였다.
이런 차별의 역사는 모든 이민을 반대한 1920년 반 이민법이 통과할 때 까지 계속되었고 이 법이 통과된 이후에 중국인 이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당시까지는 미국에 거주한 중국인 남성이 중국에 거주하는 여성을 배우자로 초청해오는 것은 허용했었다)
극단적인 미국 사회의 차별과 폭력 속에 중국인들은 도심지 한 복판으로 몰려들어 삶의 둥지를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 현재 전 미국 대도시에 널리 퍼져있는 차이나 타운의 유래이다.
뉴욕 차이나 타운은 홀랜드 터널 건설에 투입되었던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당시 진흙탕이었던 현재 Canal Street 남단에 임시 거주지를 허락하면서 시작되었다. 또 필라델피아 차이나 타운은 당시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 사이에 쓸모없는 땅에 중국인들이 거주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유명하다.
일단 중국인 노동자들이 거주 지역을 지정받으면 박봉의 임금을 쪼개 곗돈 적립하듯 모은 다음 땅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진흑탕, 기차길 옆 공해지역 등 쓸모 없는 토지였는데 소유주들은 (거의 정부 소유) 중국인들을 비웃으며 비싼 값에 팔아치웠다.
그런데 100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실을 살펴보자. 뉴욕 차이나 타운은 월스트릿, 뉴욕 시청과 소호를 잇는 금싸리기 땅이 되었으며 필라델피아 차이나 타운은 미국 독립 기념관에서 불과 2-3 블록 떨어진 도심 한복판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지긋지긋한 인종차별과 폭력에도 불구하고 오직 미래에 대한 희망 하나와 근면으로 중국인들은 불과 백년 사이에 어느 민족도 이루지 못한 자신들만의 왕국을 미국 사회 한 구석에 이루어 낸 것이다. 지금도 맨하튼 차이나 타운 이외 물밀듯 밀려오는 중국이민자들은 한때 한인 거주지역이자 상권이었던 플러싱 다운타운을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이에 대한 질시 반 경멸 반으로 동포들 사이에서 더러운 뙈놈들이라는 말이 오간 것이 불과 10여년전 1990년대 말이었다. 영어 한마디 못하고 아침에 사워도 하지 않아 몸에서 냄새가 나며 싸구려 물품 장사를 했던 초기 플러싱 중국이민자들에 대한한국 동포들의 멸시 풍조였다.
그러나 요즘 플러싱 메인 스트릿과 키세나(캐시나) 블러바드에 수백개에 달하던 한인 상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 당시 창고 건물과 중고 자동차 부속 건물등 인적이 뜸하던 프린스 스트리트에는 최신 고층 건물과 고급 중국음식점, 상가들은 중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들 새로운 건물의 소유주가 중국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수년전 인구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체 중국인들 중 30%가 넘는 인구가 의사, 변호사, 사업인 등 10만 달러 이상 고소득을 올린다고 한다. 이는 같은 인구가 17%가 지나지 않는 한국인에 비해 거의 두 배에 달한다.
필자는 중국 커뮤니티가 한인 동포사회보다 뛰어나다 거나 이들을 무조건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24%의 중국인이 연 소득 2만 4천 달러 미만의 극빈 소득층에 속하는 것도 사실이다. 차이나 타운이나 플러싱 메인 스트릿에 위치한 싸구려 음식점의 경우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열고 고기 만두 5개를 1 달러에 파는 집들이 허다하다. 이렇게 제 살 깎아먹기 사업으로 도대체 얼마의 수익을 올리겠는가?
또 이들 중국 이민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온갖 사회악과 군상들의 모습이 보인다. 노름, 가정폭력, 사기, 갱단, 착취와 인신매매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회악들이 들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100년을 바라보는 중국인의 안목과 인내 정신이다. 그리고 우리 동포사회에서 사라진 헝그리 마인드는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