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가난한 사람들
by min | 10.06.05 07:16




  필자가 미국에 온지 벌써 22년째 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시작한 뉴욕의 첫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브롱스에 월 250 달러를 주고 얻은 방은 소방서 바로 앞 건물로 하루 밤에도 대 여섯 번씩 싸이렌 소리와 번쩍이는 불빛에 벌떡 일어나기 일쑤였다.


  학교는 할렘에 위치해 있어 D 전철을 타고 145가 스테이션에서 학교 138가까지 걸어갈 때 수류탄처럼 작렬하는 계란 세례를 피하기 위해 한국 방위 생활 때 해보지도 않은 포복도 하는 우스개 상황도 연출을 하며 통학을 했다.

 
 
 
 
 

  한국에서 해보지도 않은 막노동을 동네 야채가게에 취직한 후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밤에 잠을 못이루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이런 많은 어려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석사과정 지도교수님의 추천과 격려로 취직을 하게된 Homeless Shelter와 Soup Kitchen에서 배운 삶의 지혜이다. 1989년 9월 미국 온지 꼭 1년만에 브롱스 Fordham Section에 있는 무숙자와 빈민을 위한 지역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매주 금요일에 무임금 봉사자로 시작을 했다가 이후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급하게 일을 그만둔 행운으로 매주 1백불을 받고 일을 하는 파트타임이 되었다. 하는 일은 매주 두 번 (보통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무료 급식을 돕는 일이 첫째였다.


  하루에 약 200명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이었는데 이 200명의 급식자의 대부분이 무숙자 소위 홈레스가 아니고 인근 빈민 지역에 거주하는주민들이었다. 이들 중 나이가 많이 든 인근 백인 부부는 아침 10시 45분에 줄을 서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문을 닫기 직전 3시 경에 다시와서 점심 겸 저녁을 먹기도 했다.


  그런데 도미 1년 차로 아직 영어도 서툴고 미국식 문화에도 익숙치 않은 필자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이 건물 모퉁이에 서서 보초를 섰던 홈레스 Pete였다. 당시 Pete라는 이름을 알지 못해 Peter라고 발음했던 필자를 조롱에 가까울 정도로 비웃고 온갖 한국 비하 발언을 퍼부은 혐오스런 인간이었다.


  아침에 지나갈 때마다 (당시 버스 값을 아끼기 위해 약 30분 거리를 걸어 다녔다.) “커피 사먹게 쿼터 (25센트)를 달라”는 둥 “담배 한개피 달라”는 둥 집요하게 괴롭혔다.


  우여곡절 끝에 조금 안면을 튼 다음 알고보니 그는 한국 동두천에서 근무한 미군출신(Army Veteran)이었다. 온갖 한국 쌍소리에 하는 소리는 자신의 한국 여자친구 이름을 열거하는 것이었는데 이 친구를 통해 미국 사회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또 전반적인 삶의 경제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한 동기가 되었다.


  주 100 달러의 임금으로 시작한 사무실일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한 것으로 미국 정부를 상대로 이 무숙자(Homeless)의 주소를 확인해 주고 정부 복지 연금을 수령한 다음 이 돈을 이 무숙자 앞으로 되어있는 구좌에 입금을 시켜주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정부 보조 수령액이 비교적 넉넉하여 Pete 처럼 군대 전역자에게 약 600달러의 보조금이 지불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집을 잃은 이들 Homeless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을 주소가 없으므로 필자가 일하던 Non Profit Social agency에서 주소를 제공했던 것인데 이 돈을 수령한 다음 바로 본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3개월동안 저축을 하여 1800 달러라는 목돈을 마련한 후 집을 얻는데 쓰도록 저금 통장을 주는 일이 필자의 임무였다.


  11월 말 Thanks Giving Day Party에 이들 Homeless들을 모두 초청해 파티를 열고 통장을 건네주는 예식을 거행했는데 많은 이들이 너무 기뻐하며 고마워했다. 특히 애 엄마들의 경우 거주지가 생기면 Foster Care에 있는 자기 애들을 다시 찾아올 수 있다며 눈물을 적시는 이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뿌듯한 자부심과 또 한편으로는 측은지심에 내 눈시울도 뜨거웠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그런데 문제의 Pete라는 인간은 필자가 몇 번을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나지를 않았다. 다음주 화요일 198가 길 모퉁이에서 천연덕스럽게 아침 커피 값을 요구하는 Pete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며 네 돈도 챙기지 못하는 인간에게 내가 왜 돈을 주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미안한듯 비굴한 표정을 지으면서 정작 하는 얘기는 자기는 그런 돈 필요 없으니 정부에 돌려보내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뒷통수를 강타하듯 내려친 의문은 왜 Pete 같이 미국에서 태어나 온갖 혜택을 받고 자라난 사람들이 이토록 못사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첫째였고 둘째는 왜 이들은 재산을 모으지 못하고 밑바닥 인생으로 전전하느냐는 것이었다.


 
 
▲ 맨해튼의 우산장사.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계없음
 
 
  이후 미국 생활 22년간 Pete와 같은 이들을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무수히 보았고 학위 조사차 2년간 들렀던 한국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다. 앞으로 한국과 미국의 서민 경제 문제를 다루면서 이 의문에 대해 접근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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