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백색테러 40년 주기설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을 앉혀놓고 36년전 군부의 언론인 테러사건을 입놀린 황상무 시민사회수석 파문이 일파만파(一波萬波)다. 황상무 수석은 지난 14일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MBC 잘들어”하며 “내가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며 1988년 오홍근 중앙경제 사회부장 테러사건을 언급했다. MBC는 이날 뉴스데스크 보도에서 황수석이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로 기사를 쓰고 했던 게 문제가 됐다는 취지라고 사건의 배경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황수석의 충격적인 언행은 누가 봐도 MBC에 대한 겁박(劫迫)이요, 전체 언론에 대한 날선 으름장이었다.
MBC 캡처
KBS에서 뉴욕특파원과 앵커를 지낸 황상무는 30년 근무후 2021년 11월 퇴사하고 한달여 뒤 국민의힘 윤석열 선대위에 합류한 인사다. 그가 정보사를 나왔다길래 군복무 이력을 살펴보니 회칼 사건 이듬해인 1989년 보충역으로 입대한 것이었다. 정보사에서 방위근무를 한 그가 쫄병시절 풍문처럼 들었을 얘기를 잘 아는양 과시한 것도 우습고 대한민국 군부의 가장 치욕적인 백색테러를 부끄러운줄 모르고 기자들을 겁주는 에피소드로 떠벌였으니 황당함이 더하다.
40대 이하는 잘 모르겠지만 오홍근 테러 사건은 군부 차원에서 비판언론에 대한 테러를 자행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시 사건으로 잠깐 돌아가보자.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을 한달여 앞둔 8월 6일 아침 7시 30분 서울 강남 주택가 청담동에서 대담한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30대 괴한 3명이 출근중이던 중앙경제신문 오홍근(46) 사회부장에게 다가가 주먹과 발로 때리고 어깨와 왼쪽 허벅지를 예리한 흉기로 찌르고 도주했다.
이 사건은 아파트 경비원이 인근에 주차된 수상한 포니 차량 번호를 적어놓은 것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경찰은 차량 번호를 조회한 결과 이 차량이 육군 정보사령부 소속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정보사는 범죄사실을 은폐하기위해 운행일지를 없애고 차량수리도 하는 등 알리바이 조작에 나섰다. 상식적으로 군 첩보기관이 백색테러라는 엄청난 일을 벌인다는 것은 믿기 힘들었다. 당시 대통령은 군부출신 노태우였고 군당국도 펄쩍 뛰는 상황에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 8월 23일, 한 익명의 제보자가 중앙일보에 "정보사 소속 부대원 4명의 사건 당일 행적이 불분명하다"며 신원을 제보했다. 보도후 파문이 확산됐고 야당이 진상규명을 촉구하자 결국 국방부는 정보사 부대원 4명이 오홍근부장을 테러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정보사 예하부대장 이규홍 준장이 오홍근부장의 보도에 불만을 품고 부하인 박철수 소령에게 혼내주라고 지시, 박 소령은 자신의 산하 요원 네 명에게 해당 테러 작전의 진행을 맡겼다는 것이다. 또한 육군정보사령부 이진백 소장은 이 사건을 보고받고도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인 테러는 군 첩보기관이 감행한 초유의 불법 테러 공작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군법재판소는 이 준장과 박 소령에게 집행유예, 테러 임무를 집행한 대위에게는 선고유예라는 터무니없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죄질로 봐서는 엄중 처벌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범행 동기가 개인의 사리사욕이나 이기심이 아니라 군을 아끼는 충정에서 비롯됐고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가볍기 때문에 이를 참작하였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에 엄청난 반발 여론과 함께 검찰이 재심을 강력하게 요구했으나 고등군법회의는 한술 더떠 집행유예를 받았던 준장과 소령에게도 선고유예 판결을 내리며 묵살(默殺) 해 버렸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의 상당수가 다시 정보사로 복귀했다는 사실이다.<이상 나무위키 참조>
사건의 진상은 정말 국방부 발표 그대로일까. 테러를 당한 오홍근 부장은 MBC와의 병상인터뷰에서 “군부가 보도에 대한 불만으로 테러했다고 하지만 나는 잘못된 군사문화에 대한 기사를 썼지, 군부에 대해 쓴 적이 없다. 특정한 군부대를 지목한 적은 더더욱 없다”며 왜 정보사가 조직적으로 테러계획을 짠 것에 의문을 가졌다.
정보사 이진백 소장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하나회 출신 이진삼의 동생으로 이진삼은 노태우계파에 속했다. 노태우정부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이어질리 만무했다. 그나마 이 사건이 정보사 소행으로 밝혀진 것도 4명의 부대원을 정확하게 특정한 제보 덕분이었다. 이는 군 내부자 아니면 알기 힘든 내용이라는 점에서 당시 군부 계파간 갈등이 촉발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더 큰 배후(背後)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노태우 정부 초기에는 사회 각계의 민주화요구에 대해 수구세력의 반발이 심화되고 있었다. 오홍근 테러사건이 일어난지 열하루뒤인 8월 11일엔 재야운동단체 ‘우리마당’ 사무실에 괴한 4명이 침입해 회원인 대학생들을 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 있었고 이듬해엔 현대중전기 노조 피습사건, 호국청년연합회의 전민련 점거 등 잇따른 백색테러가 자행됐다. 마치 해방직후 좌우 대립 과정에서 여운형 김구 선생 등 암살 사건이 공공연하게 벌어진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고보니 백색테러는 1940년대와 1980년대, 2020년대로 이어지며 40년 주기로 반복되는듯한 모양새다. 황상무의 돌연한 ‘칼빵 발언’은 반평생 언론에 몸담았고 충분히 논란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의도’를 생각치 않을 수 없다. MBC 등 정권 비판 언론은 법과 제도를 넘어 가혹한 응징이 필요하다는 내부의 목소리 말이다. 만에하나 '정부에 반대하는 언론은 테러를 가해도 된다'는 선동 효과를 주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안그래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칼에 목을 찔리는 끔찍한 테러를 당했는데 대통령실 수석이 백색테러를 소환했으니 극렬지지자들의 증오(憎惡)에 기름을 붓는 행위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MBC기자협회는 15일 성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황상무 수석은 잘 들어라.’ 즉각 사과하고 사퇴하라”
글로벌웹진 NEWSROH ‘소곤이의 세상 뒷담화’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s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