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이 울리고 2011-2012 시즌 첫 경기가 시작한다. 내 눈 바로 앞에 펼쳐진 상황이 데자뷰(deja vu)처럼 다가온다. 고등학교 선수 시절엔 매 게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던 경기 시작 휘슬과 심판이 두 선수 사이에서 허공(虛空)으로 던지는 게임 볼이 이 날만큼은 꽤나 특별하다.
대학 선수 시작이래 나는 몇 걸음 떨어진 우리 팀 벤치에서 경기 시작을 맞은 경우가 많았다. 1학년 첫 시즌을 앞두고 쾌조의 컨디션속에 마지막 훈련을 하던 날 불의의 부상으로 두달이나 깁스한 것은 불길한 징조였다.
부상이 완치되고나니 나보다 좋은 체격조건과 실력이 뒷받침된 선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이 졸업을 하고서야 내게도 기회가 왔다. 참으로 부끄러운 기회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순간 기대보단 후회가 더 많다.
고등학교 선수 시절 난 에이스였고 코치와 선수들의 든든한 서포트 아래 내 의지대로 플레이를 했었다. 매 경기 중요한 플레이는 항상 나를 거쳐 진행되었다. 하지만 대학 농구는 보다 경쟁이 치열했고 나에게 부여된 기회를 잘 살리지 못했다.
수 만 명의 고교 농구 선수들 중에 수 천명이 대학 농구에 발을 들였고 그 수 천명은 더욱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었다. 그런 경쟁구도를 알았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에게 온 마땅한 결과였었다.
성격자체가 물러터진 난 현실을 너무도 쉽게 받아들임과 같이 땅 속으로 파고드는 자신감은 농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학 생활의 삶, 인간관계, 공부, 그리고 농구 사이에서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고 포기와 실패도 늘어갔다.
혼자 생각이 늘고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없어졌나보다. 실력이 없으면 더 노력해야 했는데 난 그렇지 못했고 무얼 해야 할 줄 알았지만 바닥 친 자신감은 동기부여에 영향을 미쳤다.
스스로에게도 확신이 없던 나를 감독은 어떻게 믿고 기회를 줄 수 있었을까? 당연한 것이지. 그는 평등한 사람이었다. 모든 것에 있어서 그렇고 선수기용에 있어서도 자신의 소신에 따라 평등한 이였다.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 난 때때로 감독을 원망하고 비난도 했었지만 결국 그 시작과 끝은 내 자신에 대한 원망과 비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경변화와 바뀌지 않는 내 상황 속에서도 농구와의 관계는 이어졌다. 복잡한 생활 속에서 농구를 즐기는데 어려움은 있었어도 싫어지진 않았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다시 한번 기회가 왔다. 매번 마지막 같을 것 같은 기회가 잘도 또다시 온다. 허나 이번엔 마지막일 것이다. 나에게 다음 대학 시즌은 없다. 마지막 시즌 후에 그 수 많던 기회는 후에 나에게 무엇을 남길까?
오랜만에 찾아온 선발(先發)이 후회스럽기만 했던 지난 시간의 아픔을 녹이고 이젠 달콤하다. 몸이 조금은 떨린다. 그렇다고 긴장한 것은 아니다. 기대감에 생기는 떨림이다. 기분 좋은 떨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