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역사가 아니다”
by 김태영 | 24.05.05 17:55

역사학자 김태영의 댓글 논평

 

1. 댓글에 대해 논평한다.


댓글: 시경에 후가 나온다는데, 이 우리나라의 大韓과 관련이 있다고 하고, 그 한의 후예인 고조선이 위만에게 망했다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단군과 곰은 일본인 만든 신화라는데 제가 알고 있기론 단군신화는 심지어 삼국유사에 까지 있고, 제왕운기에도 있다고 기억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곰신화는 다 엉터리인지 궁금합니다.

 

논평: 

그 같은 주장을 하는 자()는 분명 소설가(小說家)임에 틀림없겠다. 소설가가 아니라면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없는 헛소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만(衛滿)에게 망한 조선은 단군조선의 삼한(三韓)인 변한(弁韓)으로 역시 번조선이라 한다. 번조선의 도성은 오늘날의 산서성 남부 원곡(垣曲)이다.

 

단군조선, 변한(번조선)이 지나 정권의 한후(韓侯)였다는 기록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25사가 4,022, 사고전서에 79,339, 삼국사기가 50, 고려사가 139, 조선왕조실록이 1,893, 삼국유사가 5권 합 85,446권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다.

 

곰과 호랑이는 곰()을 토템으로 하는 예()와 범()을 토템으로 하는 맥()으로 지나인들은 위도 35도로 나뉘는 황하 이북의 민족을 예맥족(濊貊族)이라 불렀다. , 곰과 범을 토템으로 여기는 민족이란 의미이다.

 

()는 단군조선의 패수(浿水)의 원래 이름으로 지금의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河內)에 위치한 오늘날의 망하(蝄河)를 일컫는 말이다. ()은 원래 염제신농씨와 치우천왕으로부터 기원된 종족 이름이다.

 

염제의 도읍지는 산성성 남서부 포주(蒲州)였고 치우의 도읍지는 산서성 남서부 용문(龍門)이다. 그런 이유로 산서성과 하남성 하내에 살던 민족이 바로 에맥족(濊貊族)이란 칭호를 갖게 된 이유이다.

 

멍청한 소설가의 소설에 신경쓰지 말고 제발 저자가 연제하고 있는 학술논문들을 차근차근 읽고 기억하기 바란다. 사실(事實)과 허구(虛構)는 다르다.

 

소설가가 아무리 역사라 외쳐도 그것은 소설일뿐 역사가 아니다. 소설이란 명칭은 장자(莊子)가 언급했듯이 글자 그대로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일컫는 말이다. 소설은 역사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2.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댓글참한역사신문에 글을 올렸더니 김육불에 대한 것 29부의 임분 즉 평양은 북경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구글 지도에 들어 가서 현재 위치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구글지도에는 황하에 대한표기가 잘되어 있지 않습니다. 댓글에서 평양을 북경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댓글을 달 수 없습니다. 북경과 서안시 같은 것은 명확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 태안시와 태산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논평

첫째, 산서성 임분(臨汾) 평양에서 하북성 북경(北京)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1,440리이다.

 

둘째, 평양이 북경이였다고 기록된 문헌사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셋째, 동양사에 나오는 북경(北京)은 모두 7곳에 있다.

 

당나라 북경-감숙성과 경계 지역으로 섬서성에 있는 태원(太原)이며 오늘날의 태욕(太峪)이다.

송나라 북경-경력 2(10411043)에 진종(眞宗)이 주필(駐蹕)한 곳을 대명부(大名府)라 하고 이곳을 북경이라 했다. 대명현은 원성현(元城縣)인데 오대시 진()이 귀향(貴鄕)을 고쳐 광진(廣晉)이라 했는데 오늘날의 강서성 파양현(鄱陽縣) 북쪽이다.

금나라 북경-천권(11381140) 초에 요나라의 상경 임황부(臨潢府)를 고쳐 북경이라 했다. 오늘날의 내몽고 임서(林西)이다.

또 금나라 금량(金亮: 완안량) 정원(11531156) 초에 요나라 중경을 대정부(大定府)로 고쳐 북경이라 했다. <>: 금나라는 북경이 두 곳에 있다.

명나라 북경-홍무(13681398) 원년에 대량(大梁: 하남성 개봉)을 북경이라 했다. 성조(成祖: 3대왕 주체를 일컬음)가 응천(應天: 강소성 남경)으로부터 북평으로 천도 후 응천을 남경이라 했다.

또 명나라가 북평(北平)을 북경이라 했다. 북평부는 경조윤이며 순천부이고 원()나라의 도읍지인 대도(大都)로 오늘날의 섬서성 임동(臨潼)이다. <>: 명나라는 북경이 두 곳에 있다.>

오늘날의 하북성 북경은 청(16361912)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

문헌사료 근거: <중국고금지명대사전>(1982), p.183, 71, 60, 122, 944.; <중국역사지명대사전>(1995), p.107, 47, 549, 42.

 

오늘날의 하북성 북경은 청()나라 때부터 부르던 이름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

 

 

뉴스로 PC버전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