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 더! 한 곡 더! 한 판 더! ”
노래가 끝나자 자리를 차고 일어난 관중들이 무대를 향해 열화(烈火) 같은 박수를 치며 외치는 소리가 귀에 설었다. ‘앵콜’ 도 아니고 ‘재청’도 아니었다. 다시 들어 보니 ‘한 곡 더!’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처음엔 산발적이더니 곧 관중들이 정연하게 “한 곡 더! 한 번 더!”를 외치고는 ‘짝 짝 짝’ 박수도 쳤다. 그러다 보니 해외동포석에 앉은 우리들도 어느새 “한 곡 더! 한 번 더!” ‘짝 짝 짝’ 따라 하고 있었다. 무대 공연자들의 화답에 관객들이 자리에 앉으며 객석이 조용해졌다.
빛고을 광주의 조선대학교 드넓은 교정에서 열린 2006년 6.15남북공동선언 6돌기념 민족통일 축하공연의 밤이었다. 방금 전 듣고 따라 외치고 박수를 보냈던 ‘한 곡 더, 한 번 더’ 는 희한한 느낌이었다, 문득 2002년 미국에서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모국의 월드컵 축구경기장에서 젊은이들이 ”오 필승 Corea! 짝 짝 짝“ 박수를 보내며 함성을 지르던 모습이 되살아 오기도 했다. 북녘에서 달려온 수 백 명, 해외에서 날아온 수 백 명과 수 천의 남녘 동포들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함성과 갈채였다. 남측 공연단의 노래들에 이어 북측 평양통일음악단은 우리 귀에도 익숙해진 신나는 노래 <반갑습니다>로 시작했다.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 분,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얼싸 안고 웃음이요, 절싸 안고서 눈물이니, 우…닐리리야………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된 듯 흥겨운 합창이 되며 열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뽕작 조 남녘의 옛 노래 <목포의 눈물>과 <번지 없는 주막>을 목청껏 불러 제끼는 북녘 남녀중창단의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 에, 궂은비 나리는 이 밤도 애절쿠려…” 는 또 다른 새로운 음색의 노래로 들려 왔다. 더 크게 환호하며 다시 울려 퍼지는‘한 번 더, 한 곡 더’의 함성과 박수가 이어졌다. 북녘과 남녘 노래를 섞어 부르며 남북해외동포가 어우러져 함께 한 잊지 못할 6월15일의 공연장이었다.
귀국 길에 오른 비행기 속에서도 나는‘한 번 더, 한 곡 더’의 묘한 생각에 잠겼다. 미국의 음악 공연장에서 노래를 잘 부른 가수나 악기 연주자가 남성이라면 박수와 더불어 브라보 (Bravo)! 여성이라면 브라바(Brava)! 또 단체에게는 브라비(Bravi)!라고 칭찬의 외침을 보내준다. 그러나 이런 엄격한 구별 없이 대부분 브라보! 라는 외침에 묻히게 된다. ‘잘 했다! 좋았다! 좋다!’같은 감사와 격려의 표현이다. 서양인들이 한국에서 공연 하는데 브라바! 브라비! 하는 게 어색하면 우리 말 외침을 보내 준다고 잘못 된 것도 아니다.
한편 뛰어난 음성이나 연주에 감동되어 재창이나 재연을 요구할 때는 갈채(喝采)와 더불어 프랑스어 ‘앙코르(Encore)’를 외친다. 익숙해진 외래어지만 ‘앵콜’로 발음했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공연자가 서양인일 경우에는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양말로 재청해 주는 게 예의상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겨레 연주자들이 서양음악을 하는데 ‘앵콜’이라고 해야만 할 이유 또한 없다. 오히려‘재창! 재청이요! 하면 관객은 편하고 공연자도 친근하게 느낄 수 있으며 또 많이 그렇게들 하고 있다.
그런데‘한 번 더, 한 곡 더’의 함성을 듣고 불러본 뒤 남과 북에서 똑같이 외치는 ‘재청!, 재창!’이라는 한자 단어에서 비롯된 어감이 좀 꺼림직하게 느껴졌다. 관용어이니 괜찮다고 하지만 그 6월의 모국 공연장에서의 외침은 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조용히 외쳐 볼수록, 들어 볼수록 친근함이 느껴지는 순수한 우리 겨레의 말이다. 한편 서양식의 ‘앙코르’는 각 개인들의 산발적인 외침인 반면‘한 곡 더!, 한 번 더!’의 외침은 저절로 연대(連帶)가 되어 제창이 된다. 거기에 정연한 박수마저 따르게 되면 집체적으로 된다. 이런 현상은 서양에서는 개인주의, 동양에서는 집단주의 문화가 발전해 왔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다른 문화와 전통을 놓고 논란을 벌일 일은 아니다.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 그 여름 미주한인청소년교향악단 창단기념공연이 LA Philharmonic 교향악단의 디즈니 콘서트 홀에서 열린다고 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100여명의 우리 2세 아들 딸들이 현세 최고의 음악연주장 무대를 꽉 채운 가운데 배종훈 음악감독의 지휘로 다양한 음악을 부모 형제들에게 선사할 것이라 했다. 공연을 앞두고 나는“우리 모두 코리안 아메리칸 유스 심포니(KAYS)의 공연을 경험하러 가자! 그들의 연주를 격려하고 많은 박수를 보내 주자. 우리 아이들의 연주가 감동적이면 우리 모두 일어서서 힘차게 외쳐주자. “한 번 더!,한 곡 더!’를” 이라는 글을 미주 중앙일보에 발표 했었다.
한편 우리 민족음악(국악)에는 판소리(창) 한 마당도 있고 가야금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산조도 있다. 산조를 탈 때 고수가‘허이,흐으음, 타~, 조타’등의 추임새로 연주자를 받쳐 준다. 판소리에서는 한참 창을 하다가 고수를 상대로 대사를 주고 받는 ‘아니리’에 연기 까지 하는‘발림’을 하기도 한다. 창이 멋드러지면 적시적소에 고수가 ‘잘헌다, 아암, 얼씨구, 그렇구. 그렇구나, 아무렴’ 같은 추임새로 흥을 돋군다. 서양음악에선 연주 중엔 아무리 좋아도 조용히 듣고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 민족음악에서는 관객도 몰입되어 사이 사이에 추임새를 넣으며 즐기기도 하고 또 흥에 겨우면 뛰쳐나가 춤판을 벌이기도 한다. 뛰어난 산조 연주나 소리 끝에는‘한 번 더 허시게, 한 번 더 해라’같이 점잖게 칭찬하거나 재창을 청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감은 양반이 풍악쟁이 예술인들을 아래로 보던 시대의 풍조가 스며 있는 것 같아 께름칙하다. 그렇다고 한 마당 끝에 냅다‘브라보! 앵콜!’소리를 지르는 것은 오히려 민망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로‘한 판 더! 한 판 더!’를 함께 외쳐주는 것은 썩 어울림직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예술의 고향이라는 광주의 그날 밤 공연 마지막 차례는 남북해외동포 전체가 손에 손 잡고 평양음악단의 선창에 따라 함께 부른 애잔한 북녘 노래 '다시 만납시다' 였다.
“백두에서 한라로 우린 하나의 겨레, 헤어져서 얼마냐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메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분단과 전쟁 속에 흐트러지고 헤어진 가족들의 설움 속에 살아 온 60년. 이산가족 상봉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부르는 노래에 어찌 이념의 잣대가 끼어들 수 있겠는가. 남북의 한 겨레가 가슴 속에 품은 애틋한 심정의 가사를 따라 부르다 보면 어느새 눈시울이 젖어 든다. 목메어 소리치게 된 그날 밤의 남.북.해외동포들도 모두 ’안녕히 다시 만나요’ 하고 헤어졌다. 그래, ‘한 번 더, 한 판 더’, 통일의 그날까지 자주 더 벌여 보자.

• 금강산 공연 동영상 처음에“반갑습니다”와 끝에 노래“다시 만납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nD1sutaM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