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코리안드림이여!
by 김해성 | 12.09.09 06:36

중국동포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거나 찾아옵니다.

산업재해나 체불, 출입국 등 다양한 문제들입니다.

사망사고의 처리와 장례는 제가 전문입니다.

오죽하면 장례전문가라는 별명을 얻었을까요.

지금도 전용 장의차가 열심히 굴러다니는 것이 문제이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차마 거절을 할 줄 모르는 저의 자세입니다.

무작정 돕다보면 업무가 엉키고 법인 운영에 차질이 발생합니다.

저를 아끼는 분들은 사건처리보다는 법인 운영에 치중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중국동포 여성 박춘분(가명)씨는 꿈에도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을 찾아왔습니다.

10년 동안 숨 돌릴 틈도 없이 땀 흘리며 죽도록 일만 했습니다.

그 동안 모았던 돈을 식당주인에게 조금씩 빌려 주었는데 7천만원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받기위해 그 식당에서 떠나지 못하고 밀린 월급이 천만원이나 됩니다.

참다못해 고소를 제기했는데 검찰의 결정은 무혐의 처분이었습니다.

억울하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도 꾸어 준 돈 문제는 당연히 민사문제입니다.

좀 아쉬운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이 가능한 체불까지 무혐의라는 부분입니다.

 

박씨는 어렵게 돈을 꾸어 변호사를 선임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지리한 소송은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재판에서는 이겼는데 막상 받아낼 돈은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인 식당주인은 모든 재산을 빼돌려 자식들 명의로 돌려놓았습니다.

또 돈을 들여 재산 추적을 했지만 허탕을 치고 말았습니다.

 

우리 옛 말에 '엎친데 덮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을 찾아 가서 검진을 받았는데 수술을 하라는 권고였습니다.

또 500만원을 꾸어 들고 수술을 잘한다는 유명한 척추전문병원을 찾아 갔습니다.

중국동포이고 의료보험도 없는데, 다만 500만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병원 의사는 500만원만 내면 수술을 하고 1주일 안에 걸어 나간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수술을 한 다음 날부터 심각한 하반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사람인데 수술을 한 후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

창피를 무릅쓰고 대소변마저 받아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3개월 여 만에 병원에서 쫓겨났습니다.

 

병원측은 법원에 1400여만원의 치료비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저는 그 병원 앞에 집회신고를 냈습니다.

몇 차례 항의 집회를 했는데 법원의 출석요구 통지가 왔습니다.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의 대상자는 하반신마비 박씨였습니다.

법원 재판장의 출석요구를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출석 요구일에 구급차량을 가지고 환자를 태워 서부지방법원에 도착했습니다.

침대에 환자를 싣고 승강기 앞에 섰는데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재판정은 3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침대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주변 몇 분의 도움을 얻어 3층까지 간신히 올려놓았습니다.

재판정에 입실을 하고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재판장은 침대에 실려 온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습니다.

심리내용이 아닌 것을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겠지요.

그래도 천신만고 끝에 입정을 한 환자의 상태를 한번 쯤 물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또 답변을 하지 못하고 며느리가 대신 대답을 하는데 그 이유도 묻지 않았습니다.

몸도 뒤틀지 못하고 천정만 쳐다보는 환자는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낮은 신음소리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판사님! 살려주세요!"

"판사님! 살려주세요!"

 

그 사이에 재판장과 박씨 며느리의 지리한 심리가 진행되었습니다.

재판장은 집회를 하지 말고 소송을 제기하라고 타일렀습니다.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어떻게 소송을 할 수 있나요?"

법률구조공단이 무료로 도와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소송은 1-2년 걸린다는데 당장 먹고 잘 곳도 없습니다."

그래도 집단 시위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집단 시위는 할 수도 없고 혼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법으로 보장된 일이기는 하지만 ------(재판장은 말끝을 흐렸습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 설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에 머물 수도 없고,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더 이상 싸울 수도 없고, 싸우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죽도록 일하고 벌었던 7천여만원을 받을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더 이상 치료를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습니다.

 

누가 이 여인을 손을 잡아 일으켜 줄 수 있을까요?

누가 이 가련한 여인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까요?

홀연히 펼쳐지는 하늘의 도움을 기다려 볼까요?

 

▲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마치고 침대에 누운 박씨를 계단을 통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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