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사업실패로 어렵던 1972년 초등 5학년에
전북 익산군 춘포면에서 서울 학교로 전학 왔습니다.
책과 도시락을 보자기에 둘둘 만 책보를 들고 등교한 제 모습에
서울 아이들이 모여들어 책보를 툭툭 치면서 놀려댔습니다.
"책가방은 어디에 두고 보자기로 싸 가지고 왔네!"
"너, 소풍을 왔니?"
시골에서는 책을 보자기에 싸가지고 다녔습니다.
남학생은 어깨에, 여학생은 허리에 둘러매고 다녔습니다.
서울 아이들이 왜 놀리는지 이유도 모른 채 울고 말았습니다.
한편으론 억울하고 화도 났지만 항변(抗辯)할 용기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놀림은 집요했고 저는 촌놈, 왕따로 서울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반 친구들은 저를 상대해주지 않았습니다.
낯선 서울 학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찔러대며 장난을 치는 쉬는 시간이 괴로웠습니다.
혼자서 도시락을 까먹어야 하는 점심시간도 외로웠습니다.
그나마 수업시간이 되면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는데···.
그날따라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고 저는 당황해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김해성! 일어나서 국어책 72페이지 읽어봐라."
엉거주춤 일어서자 싸늘한 분위기가 엄습(掩襲)했습니다.
간신히 첫 줄을 읽으며 "···했습니다."라고 끝줄을 읽으면
몇몇 아이들이 "했습니다~"라며 제 사투리를 흉내 냈습니다.
결국 웃음보가 터졌고 교실은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조용, 조용! 김해성, 똑바르게 큰소리로 읽지 못해!"
선생님의 불호령으로 소란은 주춤해졌고 저는 다시 책읽기를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사투리의 억양과 발음은 더 빛을 내었습니다.
아이들은 또 다시 웃음보를 터트렸습니다.
다리의 힘이 풀리면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눈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제 모습이 선생님의 눈에 띄였나 봅니다.
"김해성! 뭘 잘했다고 눈물 바람이야! 이리 나와!"
"그리고, 반장! 너도 앞으로 나와!"
선생님의 격앙(激昻)된 목소리에 교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저와 반장은 담임선생님 앞에 섰습니다.
"반장, 김해성의 뺨을 세 대 때린다. 실시!"
담임선생님의 지시에 반장은 사정없이 저의 뺨을 후려쳤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뺨을 만져보니 우툴두툴 손자국대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수업시간에 집단적으로 놀리는 아이들을 혼내기는커녕 놀림 당한 시골아이의 뺨을 때리게 한 선생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반장 아이를 시켜 뺨을 때린 선생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억울함 때문에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데 선생님이 저를 또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반장 아이에게 다시 뺨 세대를 때리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뺨 세 대를 맞고 자리로 돌아온 저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켰습니다.
다시 울었다가는 또 다시 뺨을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나라에 사는 같은 민족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나요?
단지 시골에서 올라와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놀림을 당하고 뺨을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외국인들의 삶은 과연 어떠할까요?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나온 이들은 하루하루의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겠지요?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제대로 항변을 할 수 없는 이들은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30년이 넘게 연약한 이들의 인권을 위해 살아온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최초로 인가 받은 '지구촌학교'의 설립도 뺨 맞은 아픔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민의 자녀들은 어떻겠습니까?
피부색이 다르거나 언어가 다르고, 문화와 습관도 다릅니다.
완득이처럼 가난한 한국 아버지와 이주여성 엄마의 아들로 살아갑니다.
한국 학생들도 왕따-학교폭력에 시달리는데 이주민 학생들의 고통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들의 아픔을 알기에 이주아동을 위한 대안학교가 필요했습니다.
지구촌학교 새내기인 현정이는 한국 엄마와 방글라데시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병설유치원에 다니던 현정이는 아빠의 검은 피부를 닮았습니다.
초등학생 오빠들이 "야, 깜씨! 왜 세수도 안 하고 다녀!"라며 놀려 댔습니다.
심지어는 밀어 넘어지게 해서 다치기도 했습니다.
결국 현정이는 유치원 가기를 두려워했고, 다른 유치원을 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애를 태우던 현정이 엄마는 지구촌학교 소식을 들었고 학교 근처로 이사를 왔습니다.
기자 한 분이 물었습니다.
"이 학교 좋으니?" "좋아요"
"뭐가 좋은데?" "놀리는 애들 없고, 때리는 애들 없어서 좋아요"
지구촌학교 개교를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자기 둘러매고 상경(上京)했던 열한 살 촌놈이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사투리 때문에 놀림 당하고 뺨까지 맞았던 촌놈이
한국에 돈 벌러 온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습니다.
한국 남자에게 시집 온 다문화엄마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습니다.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저의 인사말은 정확하게 틀렸습니다.
지구촌학교를 세운 것은 제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익명(匿名)으로 거액을 쾌척(快擲)하신 어르신과 각 기업들,
그리고 크고 작은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여러분들이십니다.
저는 다만 이 아름다운 사역에서 심부름 역할을 맡았습니다.
촌놈의 눈물을 보시고 아픔을 씻게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구촌학교 개교식에 참 많이들 오셔서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 귀한 발걸음마다 찾아뵙지 못하고 이렇게 인사드림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지구촌학교 개교를 축하하시며 당부하신 그 뜻을 새기겠습니다.
지구촌학교의 주인은 다문화 아이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구촌학교의 주인은 다문화 학부모들이라는 것 또한 잊지 않겠습니다.
저를 비롯해 지구촌학교 모든 구성원들은 주인들을 잘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다문화 희망세상의 주인공들을 잘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촌놈의 마음을 잘 지키겠습니다.
촌놈의 아픔 또한 잘 새기겠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대안학교로 육성하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사역에 동참하신 모든 분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다문화 대안초등학교 '지구촌학교'
대표 김해성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