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잘린 손가락
by 김해성 | 12.01.20 07:04

 

오후 3시경, 외마디 비명이 들렸습니다.

한 손을 잡고 뒹군 바닥엔 피가 튀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우왕좌왕 모여들고 웅성거렸습니다.

기름 냄새에 피 비린내가 뒤섞여 진동했습니다.

 

차에 태워진 소년은 응급실(應急室)로 향했습니다.

감겨진 헝겊에선 피가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앙 다문 입술에선 비명이 찢겨져 나왔습니다.

의료진들은 소년을 수술실로 황급히 옮겼습니다.

 

소년의 왼 손이 들어간 상태에서

육중한 사출기(射出機) 기계가 내리쳤습니다.

4개의 손가락은 아예 으스러졌습니다.

형체도 없이 뭉개졌습니다.

봉합수술 할 살점도, 뼈 조각도 없습니다.

손 무덤에 묻어줄 손가락마저 없었습니다.

 

열네 살 소년은 중국에서 온 어린 동포입니다.

한국에 돈 벌러 간 아버지를 찾아서 왔습니다.

이혼한 어머니는 제 갈 길을 갔기에 외로웠습니다.

중국에서 중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왔지만 학교는 갈 수 없었습니다.

동포이긴 하지만 한국말이 매우 서투릅니다.

중국인학교를 다니느라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무료 한국어 교실에 몇 번 나갔지만 이내 시들해 졌습니다.

단칸방에 갇혀 살다시피 했습니다.

따분함에서 벗어나고자 공장을 찾았습니다.

물건 모형을 찍어 내는 것이 사출이란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자동차 부속품을 생산하는 공장이었습니다.

한 달에 170만원을 받기로 했습니다.

월급을 받으면 사고 싶은 것도 많이 있었습니다.

 

작년 2011년 12월 12일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장에 일하러 갔습니다.

그것도 첫 출근을 한 날입니다.

안전교육이나 주의사항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작업하는지 몇 번 보여준 것이 전부입니다.

오후 3시경, 아뿔싸……

기계에서 물건을 빼내려는데 기계가 내려 왔습니다.

미처 손을 빼 낼 틈이 없었습니다.

기계가 손을 덥석 물었습니다.

피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어린 소년은 한 달째 병원에 누워 있습니다.

명찰 하나가 침대에 달려 흔들립니다.

나이는 22세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는 미성년자 고용에 대한 책임회피입니다.

공장 사장님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소년을 파견한 용역업체가 책임질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용역업체는 자신들은 산재(産災) 처리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병원에선 밀린 병원비를 내라고 합니다.

나이가 많으신 조부모님이 간병을 하다가 허리를 조아립니다.

 

그 공장 사장에게 소년은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사출기계 부속품만도 못한 존재일까요?

하루 생산량을 충실히 뽑아냈으면 귀여움 받았을텐데

출근 첫날에 사고를 저질렀으니 재수 없는 놈일 것입니다.

한국 소년만 같았으면 일을 무작정 시켰을까요?

중국 놈이니 견습도 없이 그냥 사출기계를 맡겼겠지요.

 

그 소년의 이름은 '김상일'입니다.

김해 김씨인지 광산 김씨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한 핏줄로 태어난 한민족의 아들임이 분명합니다.

소년은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아 왔습니다.

꿈을 안고 왔습니다. 학교도 다니고 싶었습니다.

서러움을 꾹 참고 돈도 벌어서 꿈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열네 살 소년 상일이의 꿈은 요리사입니다.

하얀 가운에 모자를 쓰고 정갈한 솜씨로 만든 작품

꽃보다 더 아름다운 요리에선 향긋한 냄새가 풍깁니다.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의 물결이 울려 퍼지는 호텔입니다.

그의 요리에 취한 고객들이 ‘요리의 마에스트로’라며 찬사를 보냅니다.

 

그런데 소년의 황홀한 꿈이 뭉개졌습니다.

악덕 사업주와 육중한 사출기에 으깨졌습니다.

중국동포 소년의 아픔이 피투성이가 되어 뒹굴고 있습니다.

 

그 소년을 만나고 왔습니다.

여드름 뽀송뽀송한 소년이었습니다.

남은 한 손으로 퍼즐을 맞추며 놀고 있었습니다.

붕대에 감겨진 잘린 손을 잡는데 맘 아팠습니다.

소년의 잘린 손을 잡으면서 그의 꿈을 잡아먹은

OECD 가입국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 슬펐습니다.

 

누가 소년의 꿈과 희망을 봉합시켜 줄 수 있을까요?

  

- 다문화 희망세상을 꿈꾸는 김해성 목사 올림

<http://g4w.net/m3_0.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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