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엄마와 흑인아들
by 김해성 | 12.01.10 23:51

아담한 체구에 눈빛 반짝이는 여자 약사님!

그 아름다운 약사님은 일요일이면 가리봉에 옵니다.

올해로 7년째 이주민의료센터에서 자원봉사 중입니다.

이주민과 다문화가정을 위해 무료로 약을 지어드립니다.

그 약사님에겐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에겐 아버지가 없습니다.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를 본 적도 없습니다.

흑인소년은 동두천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한국을 떠났습니다.

경기도 동두천은 주한미군 주둔 지역입니다. 그러다보니

한국 여성과 주한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동이 많습니다.

 

1985년 동두천에서 개업을 한 약사님은 적십자 봉사활동 중에

남편 없는 홀몸으로 흑인아들을 키우는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1991년, 흑인소년의 엄마로부터 "수일이 좀 살려주세요!"라는

다급한 연락을 받고 갔더니 소년이 단칸방에서 뒹굴고 있었습니다.

그 약사님은 네 살짜리 소년을 병원으로 급히 옮겨 수술 받게 했습니다.

그 약사님과 소년의 엄마는 그 고마운 도움으로 해서 매우 가까워졌습니다.

 

흑인이 지나가면 야, 깜둥이 지나간다!

혼혈인이 지나가면 야, 저거 튀기다 튀기!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왕따하고 멸시하는

차별 한국(差別韓國)에서 흑인소년이 탈 없이 자랄 수 있을까요?

 

홀어머니에 검은 피부, 그리고 가난과 부끄러움!

하나만도 버거운데 굴레에 겹겹이 싸인 그 소년은

놀리며 왕따 시키는 것을 참다못해서 친구들과 자주 싸웠습니다.

 

그렇게 상처로 얼룩졌던 소년을 일으켜 세워준 것은 축구였습니다.

그 소년은 뛰고 달리는 축구가 참 좋았습니다.

공을 차는 동안은 굴레와 상처를 잊을 수 있었던 데다

소질까지 뛰어났기에 학교 축구부 선수로 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선수로 뛰려면 대한축구협회에

선수등록을 해야 하는데 아버지 없는 소년에겐 호적(戶籍)이 없었습니다.

그 소년의 엄마는 약사님을 참 좋은 이웃으로 여겼습니다.

 

소년의 엄마는 아들이 아프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 약사님께

도움을 청하곤 했는데 그것은 마음 열고 의지까지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적 문제 또한 약사님과 상의했고 그는 혼신을 다해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 약사님은 생업에 매달려야 하는 소년의 엄마를 대신해서

축구장을 찾아가 응원하고 먹을 것을 사다 나르고 담임을 찾아가

검은 피부 때문에 왕따 당하지 않도록 보살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소년은 언제든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준 약사님을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그 흑인소년과 그 약사님이 <지구촌사랑나눔>에서 최근에 만났습니다.

강수일(24, 제주유나이티드) 선수를 홍보대사로 위촉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수일아,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라"고 부탁했고 아들은

"다문화어린이를 위한 장학 사업을 구상 중이니 어머니도 참여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문화어린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강수일 선수!

'한국의 앙리'로 불리는 그가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은

모진 세월에도 흔들리지 않은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었습니다.

힘겨운 여인과 소년을 묵묵히 돌봐준 또 다른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 약사님에겐 딸이 한 명 있는데, 딸이 중학교 일학년 때부터

봉사현장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원봉사의 기쁨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어머니의 딸인 그 여중생은 지금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가 됐습니다.

사교육보다 봉사 현장에서 나눔을 배웠는데 사랑의 약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 약사님은 지난 2003년에 약국을 정리하고 파트타임 약사로 일하면서

외국인노동자와 혼혈아동, 여성장애인들을 돕는 일에 몰두하고 나섰습니다.

사랑의 봉사자인 그 약사님께 인생에 대해 여쭈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제가 약사가 된 것은 사회로부터의 이런저런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는 것은 봉사라기보다는 입었던 혜택을 사회에 환원(還元)시키는 것이죠.

그래서 수일이와 딸에게도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라고 당부했죠.

사회에서 입은 혜택에 대한 환원을 아직 다 못했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하려고합니다."

  

- 다문화 희망세상을 꿈꾸는 김해성 목사 올림

 

※ 혼혈아동, 혼혈인, 흑인소년 등이 차별 언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어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부득불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by 한동신 2012.01.11 01:01
하느님이 세상에 또 한사람을 통해 사랑을 드러 내시는.....
감사합니다, 뉴스로를 통해 김해성목사님을 만나게 해주셔서-
by 차주범 2012.01.11 02:16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인순이 누님 생각이 나네요..
by 김하목 2012.01.13 04:43
참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글입니다.  늘 그렇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는 많은 분들이 있기에 사람이 참 아름다운것 같습니다.  잘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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