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안에서 큰 자 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by 정영민 | 12.03.26 00:49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들 각자를 향하여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신다면 가장 많이 나올 대답이 아마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라는 사도 베드로의 고백이 아닐까?

이러한 대답은 분명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일깨워 주는 훌륭한 대답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시인한 베드로의 고백을 단지 우리들의 입술로 대답한 것 자체가 대답한 사람의 진정성을 구분하게 해 주지 못 할뿐더러 대답한 자의 천차만별의 신앙수준도 가늠할 수 있게 해 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의 진정한 신앙의 자태(姿態)는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그것은 그 사람이 교회를 무엇이라 생각하고 어떻게 대하는가, 어떤 모습으로 교회에 나오는가,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교회를 대하는가 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필자가 자주 하는 얘기지만 어떤 이가 마음의 평안과 치유를 얻기 위해 교회를 찾는다면 그 이에게 교회는 병원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영혼의 양식을 얻기 위해 교회에 오는 이에게 교회란 식당과 같은 곳이요, 현재의 능력으론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어 뭔가 변화받기 위해 교회를 찾는다면 그에게 교회는 훈련소가 될 것이다. 이민살이가 힘들고 외로워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위해 오는 이들에게 교회는 사랑방같은 곳일 것이다.

교회는 예배의 기능뿐만 아니라, 교육, 교제, 봉사의 기능들이 있으므로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교회를 찾는 것을 누가 탓할 수 있으랴! 이처럼 다른 생각과 목적으로 교회를 찾는다해도 교회는 위선적이다 이기적이다 하여 찾지 않는 이들보다는 교회의 본질을 익히고 배울 기회가 더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태복음에는 긴 예수님의 설교가 자주 나오는데, 산상설교(5-7장), 제자 파송설교(10장), 천국 비유설교(13장)이며 18장에는 예수님께서 바라던 믿음의 공동체의 참 모습에 관한 교회 설교가 나온다. 마태복음 18장을 일컬어 흔히 교회규범이라고도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교회를 향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에 대해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1절에서 5절 까지는 ‘천국에서 누가 큰 자인가?’ 라는 제자들의 의문에 예수님께서 주신 가르침이 나온다. 6절에서 14절까지는 공동체내의 보잘 것 없는 사람, 나약한 사람, 쉽게 무시되는 사람들인 소자(小子)를 업신여기거나 넘어지게 하지말라는 가르침이, 15절에서 18절까지는 형제가 죄를 짓거든 심각하게 여겨 서로 충고하여 바로 잡아주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이어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지만, 회개하거든 일흔번씩 일곱번, 즉 끊임없이 용서해 주라는 가르침(18:21,22)과 더불어 임금에게 일 만 달란트 탕감받고도 자신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 진 동료에게 빚 독촉을 하다 결국 고소하여 옥에 가두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18:23-25)와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는 결론이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교회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중 첫번째는 너희는 교회안에서 어린아이처럼 늘 자신을 낮추어라는 교훈이다. 세상은 꼬리가 되지말고 머리가 되라, 으뜸이 되라, 최고가 되라, 1인자가 되라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평생, 때마다 순간마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강요하고 재촉한다.

하지만 천만에! 교회는 도무지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결코 아니다.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야 말로 하늘나라에서 큰 자이다”(마 18:4) 라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안에서 누가 위대한 자인가에 관한 막연한 상상의 종지부를 찍으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다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I tell you the truth,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littl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고 분명하고 준엄하게 선언하신다.

 


28년도 지난 그 옛날,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나는 학교 앞 서점에 자주 가 책구경을 즐겨 했다. 새로나온 책들을 훑어보고 용돈을 쪼개어 사고 싶은 책을 사던 나에게 어느 날, 눈에 번쩍 띈 책 제목이 <한국교회 목사, 장로 왜 이러나?>라는 책이었다.

20여년 전 미국의 신학교 시절, 동부지역 한인 신학생 연합운동을 하면서 세계 한인교회 주소록을 통하여 한국에 존재하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125개가 넘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인터넷 서점에 가 알아보면 <미주 한인 이민 교회 분열사>라는 책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교단과 교회가 수도 없이 정통과 비 정통, 주류와 비주류, 이단과 삼단(?)을 만들어내며 상쟁과 분리의 파행을 해 온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부끄러운 한국 교회 분열사는 다 지 잘나 첫째가 되고, 큰 자가 되고자하는 욕심이 만들어 낸 비극이 아니라고 누가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까?

교회 다녔던 사람들에게 왜 지금은 교회에 나가지 않느냐고 물어보며 구구절절, 사연도 가지가지다. 이민교회만 해도 한 사람 건너면 축복권, 저주권, 재정권, 영권(靈權) 휘두르며, 10만불, 20% 깎아 줘서 8만불, 벤쟈민 프랭클린 그려진 빳빳한 캐쉬 받아 챙기는 영주권 장사를 10년 넘게 해 오는 능력의 종(?) 목사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교회 세워 목사를 직원처럼 고용하고, 영주권 해 준다고 코 꿰어 이리저리 부리고 뒤로는 이민생활이 그런게 아니다 갖은 잔소리 해대다 마음에 안 든다고 짤라 버리고, 2중 장부쓰며 헌금 빼내, 자기 사업자금으로 운용했다는, 뛰는 목사위에 나는 장로 이야기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극히 일부 극단적인 사례이기를, 아니 사실이 아니라 교회를 폄하하려는 사람들이 지어 낸 이야기이기를 바랄 뿐이다. 극단적 사례가 아니라 할지라도, 내가 그냥 장로도 아니고 수석 장로인데, 내가 그냥 안수 집사도 아니고 차기 장로 후보 수석 안수 집사인데, 내가 이래뵈도 교회에서 집사서열 3위인데, 내 말빨이 이정도는 서야지 라고 목에 힘주다, 수 틀리면 교회를 나가겠다는 둥 눈뜨고 못 봐줄 드라마를 쓰는 사람들이 이민교회안에는 한 사람도 찾아 볼 수 없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가 말이다.

교회의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기 원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평생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진정한 회심으로 인한 내적 가치관의 혁명적 변화와 외적 언행의 철저한 개혁을 반드시 이루어 가야만 한다.

천지의 대주재가 되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앞에 어린아이처럼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내 손이나 내 발이 나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고, 내 눈이 나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릴 정도의 믿음의 결단으로 애쓰고 수고하며 끊임없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겸손히 간구해야만 한다.

예수님처럼 철저하게 작아지고 낮아지지 않고도 진실로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차라리 노새가 돌리는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pastorym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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