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초원의 똥들처럼
by 황선국 | 11.12.13 13:58

 

향긋한 풀내음이 코를 자극하는 이곳은 초원. 어렸을 적 흥얼대던 유행가 가사가 이처럼 딱 들어맞는 곳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어”

가축들 노니는 몽골의 초원을 본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하곤 한다. “어디를 봐도 그림이구만.” 초록 빛 융단이 깔린 꿈의 대지, 슬며시 눈을 뜨고 바라보노라면 양떼 소떼 말떼. 아무데고 드러누우면 포근한 솜이불처럼 행복한 꿈나라로 데려다 줄 것만 같은 초원이다.

 

그러나 그런 낭만은 궁둥이를 대지에 붙일 때 쯤이면 산산히 깨어지고 만다. 그처럼 푸르디 푸른 풀밭에 사이사이 빠짐없이 끼어있는 똥들 때문이다. 동글동글 까만 콩같은 염소똥, 굵직하게 덩어리진 말똥, 펑퍼짐하니 두꺼운 빈대떡 같은 소똥....

하여튼 어디 한군데 앉을 만한 구석이 없다. 마음 같아선 푸른 풀밭 위를 구르며 풀내음을 만끽하고 싶지만 이놈의 똥들은 그런 내 염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만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음의 갈등, 이놈들을 무시하고 그냥 앉아버려? 그래도 깨끗한 곳이 있는지 찾아봐?

말이 나온 김에 몽골인들이 붙여놓은 똥 이름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고로 생활과 밀접하고 용도가 많을수록 더욱 다양하고 세밀하게 분류되는 법, 몽골사람들이 분류하고 붙여놓은 똥의 이름은 우리네 용어에 비해 더욱 다양하다.

우선, 사람똥은 바-스(DGGV)라 한다. 그리고 소똥은 아르갈(GJUGL), 말똥은 허머얼(HKBKKL), 낙타똥은 테메-니- 허르걸(MTBTTYNA HKJUKL), 양똥은 헌니 허르걸(HKYNYS HKJUKL), 염소똥은 야마-니 허르걸(ZBGGYS HKJUKL), 개똥은 져그르헤(RKUKJHKA), 새똥은 상가스(VGYUGV)라고 한다.

 

이들 똥들 중에서 몽골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아르갈’(GJUGL)이라 불리우는 소똥이다. 크기에 걸맞는 강력한 화력(火力)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이 초원에서 땔감을 찾아다니다가 넙죽하게 생긴 소똥을 마치 장작이나 되기라도 한 듯 덥석 주워드는 것을 보면 “똥을 똥으로 보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확신이 되어 밀려든다.

이제 다시 초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멀리서 보면 융단처럼 포근해 보이지만 정작 어디 한군데 궁둥이를 붙일만한 곳을 찾기 힘든 곳이 초원이다. 그리고 초원은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똥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있을 것인가? 아니면 똥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서 다리가 피곤해지기 전까지 어슬렁거릴 것인가? 그 이후로는 각자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행동양식을 보이게 된다.

본인으로 말하자면 똥들을 피하는 편이다. 낭만을 위해 옷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다리 아픈 쪽이 낫다고 생각함이다. 그러나 곧 갈등을 느끼다가, 마침내는 풀과 똥이 뒤섞인 초원에 주저앉아 이내 내가 어디에 앉아있는지조차 잊어버리곤 한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으로 똥과 같다. 아니 사람이 똥과 같다. 더러운 것 같으면서도 불쌍하고, 불쌍한 것 같으면서도 혐오스럽고, 혐오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친근하고, 친근한 것 같으면서도 정나미 떨어지고, 정나미 떨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멀리할 수 없고.... 뭐 그런 것 말이다. 저마다 일정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마저 어쩌면 그렇게도 사람의 성질머리와 같을까?

그러나 오랜 세월 풍상(風霜)을 겪고 또 겪으면, 그 모양이란 것이 다 풀어져 흙이 되는 것 또한 인생과 같다. 그 단단한 ‘자아’(自我)가 으스러질 때 쯤이면 더 이상 혐오감도 주지 않게 된다. 풀어져 풀어져 흙이 되어 풀들의 자양분이 되는 똥처럼, 풀어져 풀어져 세상에 자양분이 되야 할 것이 사람일 터....

그러고 보면 천하에 쓸 데 없는 것이 ‘자아’가 풀어지지 않은 사람인 것이 분명한 것 같기도 한데.... 하기사 그래도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단단하게 뭉친 놈이면 땔감으로 쓸 수 있으니까! 그놈으로 수태채도 끓이고 보-쯔도 찔 수 있음이 분명하렸다. 으흠~. 똥 같은 인생.

풀밭에 눕다

나 초원에 발을 딛는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

가축들의 발자국 어지러운

그 자리에 내 발자국 남긴다.


나 초원에 몸을 눕힌다

염소 양 말들이 누워

꿈을 꾸며 흘린

그 똥들 위에서 꿈을 꾼다

나 초원을 가로 지른다

먹이 찾아 친구 찾아

음메 거리며 달리는 가축들처럼

내 마음의 고향을 찾아 달린다.


풀 들 사이에 끼어있는 저 똥들

어쩌면 저렇게도 그 사람 머리통 같을까

느끼한 듯 친근한 듯

어쩌면 저렇게도 그 사람 같을까.

by 이오비 2011.12.15 01:24
예전에 몽골 테렐지에서 게르~에서 하룻밤을 잔 적이 있지요 전기도 안들어온다더니 어케 영화 '화산고'를 그 가족들과 봤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전기가 없다는거...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추억을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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