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서의 이론은 무수히 많지만, 삶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이론은 하나 뿐이다”
또 다시 5.18을 보낸다. 되돌아 보니 25년의 세월이다. 5.18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피의 역사’이다. 남은 것은 말없는 망월동의 외로운 묘지들뿐인 듯 하다. 그들을 가리켜 간첩이니 빨갱이니 하던 무리들조차 이제는 그들을 참배하느니 존경하느니 하는 것을 보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저절로 든다.
빛고을 ‘광주’(光州), 그 날 그 자리에서 의기(義氣)를 품고 붉은 피를 흘린 사람들은 패배자인 듯하다. 그들은 죽음으로써,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으로써, 그 자리에 없었던 이들은 함께 고통을 나누고자 하는 동지애로써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자 했건만 결과는 패배인 듯하다. 비록 군부독재의 종언을 알리는 1986년의 6.29 선언을 이끌어 내었고, 민간정부를 출범시켰음에도 여전히 패배자인 듯하다. 그러나 더 먼 훗 날에는 반드시 승리자로 기억되기를 두 주먹 불끈 쥐고 기원한다.
역사란 두 개의 큰 축(軸)에 의해 구동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잡다한 잡색의 이론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뜨겁게 용솟음 치는 피의 축(軸)’이다. 이 ‘피의 축’이 돌아갈 때 역사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된다. 한 목숨 바쳐 쟁취하고자 하는 목적도 뚜렷해진다. 밤을 새워 역사를 논하고 정의를 꿈꾼다.
후세는 이렇게 살다간 사람들을 가리켜 ‘용사’(勇士), ‘열사’(烈士), ‘의사’(義士), ‘성인’(聖人)이라 한다. 지성인(知性人)이란 명칭을 부여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이다. 이유인즉슨, 그들의 삶은 인식(認識)하는 것과 행동(行動)하는 것 사이에 간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엔 또 다른 구동의 원리가 있다. 그것은 ‘냉정하게 눈알을 굴리는 먹물의 축’이다. 그 속은 언제나 시커멓다. 필요하면 애국지사를 잡는 일제 앞잡이가 되기도 하고 멸공(滅共)을 외치는 애국자가 되기도 한다. 필요하면 시장에 나가 사람들의 손을 부여잡고 따뜻한 미소를 짓는가 하면 ‘저 놈 죽여라’ 고함지르기도 한다. 이들이 가진 지식은 그저 ‘먹물’이라고 부르기에 딱이다. 이유인즉슨, 그들의 머리 속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생각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정보들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기가 가진 정보나 지식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이 목소리 높이며 주장하던 것들도 시절이 바뀌면 앞장서서 반대하기도 한다. 그저 필요에 따라 혓바닥이란 붓으로 오로지 자신의 ‘야망과 이익’이란 목적에 따라 온갖 자질구레한 지식들을 듬뿍 찍어 휘갈려버리기 때문이다. 먹물에 맛을 들이면 들일수록 용기(勇氣)와 의기(義氣)와 열정(熱情)은 사라진다. 오로지 빠르게 회전하는 눈동자만 남는다. 어쩌면 정보화 시대에 걸 맞는 스타일이다.
그러고 기인(奇人), 두 축 사이를 고독하게 왕래하는 부류이다. 돌연 비상한 용기를 보이며 돌출행동을 했다가 아무런 책임도 없이 사라진다. 때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열변을 토하지만 이내 술 기운에 취한 얼굴이 되어 인생무상(人生無常)을 흥얼거린다. 참으로 기이하고도 기이한 심상(心狀)이다.
이제 다시 5.18를 말해보자. 우리가 서 있는 터전과 우리가 사는 시간은 우리에게 책임과 사명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신이 서있는 자리가 어떤 역사를 지닌 자리인지 깨닫기를 요구한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짓말은 서로 하지 않기로 하자.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거짓말도 접어두자. 무조건 ‘내 탓이요’ 하는 종교적인 감성도 제껴두자.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두 개의 이론이 필요 없는 법, 오직 하나의 이론과 답이 있을 뿐이다.
최소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마음만 가진다면 그 날의 원한과 아픔을 씻어내고 새 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마다 찾아오는 5.18은 이렇게 답변을 요구하는데, 왜 우린 이토록 우매한 정치적 판단만 하고 있는가? 불과 30여년 전에 있었던 그토록 명백한 사건 하나 제대로 해석하고 처리하지 못하는 민족이 어찌 5천 년의 역사를 배울 수 있을까, 어찌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세울 수 있을까?
예로부터 기인이 많기로 소문난 민족이요, 먹물이 많기로 유명한 민족이지만, ‘지성’(知性) 또한 많지 않았던가? 우리 민족의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능히 그 수 많은 말들과 갑론을박 속에서 진실한 답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말없이 흐르는 헤를렝 강변을 바라보며 오래 전 그 시절에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린다.
‘예성강 푸른 물에 물새가 날면
말하라 산천이여, 그 때 그 자리 그 사람들
말하라 산천이여, 너만은 알리라.
조국 위해 쓰러져 간 그 때 그 자리 그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