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자인”이는 이제 막 만 4살이 됐다. 근데 요즘은 예전에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다. 그로 인해 더욱 대견스럽기도 하고, 이토록 아이는 빨리 커가는구나! 하는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뭔고 하니, 가끔 방에 혼자 틀어박혀서 뭔가를 소리 없이 하곤 하는데 문을 열려고 하면 “안 돼!, 잠깐만! 들어오지 마!” 하며 조용하면서도 애절하게 말하곤 한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아내가 뺏어다가 가방에 넣어놓은 티슈를 몰래 가방에서 다시 빼내서는 자기 가방에 집어넣느라’ 소리 없이 작업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엄마 몰래 ‘밖으로 가져가지 말라는 머리띠를 그 작은 가방에 집어넣느라 진땀을 흘리며’ “들어오면 안돼!” 말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건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하고 ‘엄마 몰래 물건 집어넣는 일’을 도와주곤 한다. 그리고 나는 잠시 행복감에 빠져든다.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세상이 비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벌써 몸으로 체득하고 있으니, 과연 우리 딸은 하늘이 낸 천재로구만.... 반드시 세상을 훔치고도 남으렸다.”
‘비밀’을 가질 수 있다면 큰일도 저지를 수 있는 법, 이참에 ‘비밀’ 이야기나 더 해보고자 한다. 이쯤 되면 ‘비밀’에 관한 이론서적에서 한 줄 인용하여 말을 시작하면 좋으련만, 아직 그런 분야로 공부해 보지 못한 탓에 그저 상식적인 선에서 시작해 본다.
▲ 이상 사진 영화 '비밀의 문' 포스터
‘비밀’이란 것은 도대체 어디가 그 출처일까? 누가 그 ‘비밀’이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비밀’이란 단어를 둘러싼 안개를 헤치고 보면, 남는 건 ‘욕망’(慾望)과 ‘야망’(野望)이다. 뭔가 부족한 것을 느끼고 그걸 채우고자 ‘의지’(意志)하는 데서 ‘비밀’은 생겨난다. 생각도 없고, 꿈도 없고, 희망하는 것도 의지하는 것도 없으면 ‘비밀’은 절대로 생겨나지 않는 법이다.
자신들의 ‘명예’나 ‘신변’을 지키기 위해서건 혹은 ‘이권’이나 ‘명예’ ‘권력’ ‘특권’ ‘자유’을 쟁취하기 위해서건 아무튼 비밀에는 강력한 ‘희구’(希求)와 ‘의지’(意志)가 그 핵심(核心)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비밀은 ‘욕망’이나 ‘야망’을 품고 그걸 실현하고자 ‘의지’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중엔 선한 것과 악한 것 모두가 포함된다.
‘비밀’에는 또한 일정한 ‘영역’(領域)이란 것이 있다. 그 비밀을 공유하는 범위에 크기가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혼자서만 가슴 속 깊이 간직할 수도 있고, 아니면 두 세 사람이나 일단의 그룹이 공유할 수도 있다. 하여간 ‘비밀’이 ‘비밀’로서 존재하려면 그 영역이란 것이 지켜져야만 한다.
그리고 ‘비밀’에는 그 영역에 포함된 사람끼리만 은밀하게 통하는 기호(記號)와 언어(言語)가 있다. 비밀그룹에 속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지만, 그룹에 속한 사람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가는 상징체계가 존재한다. 붉은 깃발이나 휘청 휘어진 낫, 꺽어진 십자가나 아니면 ‘은어’(隱語)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비밀’이란 것이 존재하면 반드시 그 ‘메카니즘’(Mechanism)이 작동된다는 것이다. 그 메카니즘이란 것에는 폭력과 물리력 자살 전쟁 개발 자금 등과 같이 ‘가시적’(可視的)인 것도 있고, 애국심 민족주의 노후보장 안전 행복 이익 해방 자유 독립 등과 같이 ‘비가시적’(非可視的)인 것도 있다. 예를 들자면, ‘군수산업자’들과 정치인들의 비밀결사가 만들어지면 ‘인권’이나 ‘국제질서와 평화’란 기치(旗幟)가 펄럭이지만 반드시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과 같은 메카니즘이다.
▲ '일본해'와 함께 독도를 '리앙쿠르 록스'로 표기한 미 국무성 지도
이제 사족(蛇足)을 떼고 얘기하자면, 요즘 대한민국의 국내상황이나 주변의 국제정세가 너무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심심하면 테러니 자유니 인권이니 하면서 일본지지 발언을 하는 미국이나, 고구려가 어떻다는 둥 발해가 어떻다는 둥 소수민족이 어떻다는 둥 횡설수설하는 중국, 유엔상임이사국이니 자위대니 독도니 신사참배니 역사인식이니 배타적 경제수역이니 하며 딴지를 트는 일본, 하여간 이상한 소리들만 해대면서 툭하면 핵무기나 미사일 얘기에 열을 올리는 꼴이 ‘국가’(國家)라기 보다는 꼭 무슨 비밀결사(秘密結社) 같다는 것이다.
행담도 개발이니 러시아 유전이니 이중국적자에 대한 새로운 법률제정이니 청계천 개발의혹이니 북핵 6자회담이니 복잡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마치 안팎으로 ‘밀의단체’(密議團體)들이 서로 각축(角逐)을 벌이는 것 같다는 얘기다.
이런 판에서 혼자 점잖게 정정당당(正正堂堂)을 외치며 공명정대(公明正大)를 ‘신조’(信條)로 삼을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한데.... 이러면 어떨까! 아예 대한민국을 ‘국가’라고 생각지 말고 그냥 ‘비밀결사’라고 생각하고서 우리끼리 통하는 얘기를 좀 만들어낸다면.... 예를 들어, 우리끼리만 은밀하게 ‘세계정복’의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든가, 우리끼리 입을 맞추고 생각을 맞추어서 우리끼리 만이라도 좀 잘 살게 되는 미래를 꿈꾼다든가 하는 그런 거....
이것도 복잡하게 들린다면, 아예 탁 까놓고 얘기해 보겠다: “우리끼리 만이라도 제발 얘기 좀 하며 살자보자구요!” “하여튼 이상한 공상이라도 좋으니까 우리끼리 만이라도 제발 좀 같은 심보 가지고 살순 없겠나 이 말이오! 물어뜯는 건 바깥 도둑놈한테나 하자 이거죠!”
비밀이 있으니 행복하더라
내 키 기껏해야 165
저 높은 하늘에 닿기에는 역부족
그러나 내게 비밀이 생긴 후
하늘이 내 발 아래로 보인다.
내 두 팔 다 벌려도 152
이 세상 주무르기에는 역부족
그러나 내게 비밀이 생긴 후
내 팔은 봉황의 나래 된다.
비밀은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
비밀은 하나가 되는 지름길
비밀이 있음으로 적이 생기고
비밀이 있음으로 동지도 생긴다.
언제 한번 몽골의 초원에서 뵐 때까지 건강하소서!
아참, 저는 뉴욕에서 글을 쓰는 한동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