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리의 별 아시나요’ 한국전쟁 64주년기획 <1> 美참전용사 증언-리
by 한종우 | 14.06.25 02:55

 

 

한국전쟁 64주년을 맞아 미국의 참전용사로부터 한국전쟁에 관한 생생한 증언(證言)을 듣는 시리즈를 올립니다. 참전용사 증언은 한국전참전용사 디지털기념관재단(www.kwvdm.org) 이사장 한종우 박사가 직접 인터뷰해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Lt. General Richard Carey (Dallas, TX)

 

오하이오 주 출생으로 오하이오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미 해병대에 입대하여 해병대 제 1사단에 배치됐다. 1950년 8월 중순 군함(軍艦)을 타고 일본에 도착하여 2주일간 인천 상륙작전 대비 훈련을 받았다. Chesty Puller 중령 휘하에 소속되어 일본에서 인천으로 향했는데, 태풍으로 지연됐다.

 

5사단이 인천의 월미도 (Red Beach)에 새벽에 상륙하고, 본인은 밀물시기인 저녁에 Blue Beach에 상륙하였다. 상륙작전시 적의 총알이 무전기에 맞아 생명을 구했고, 서울로 진격하는 길에 북한군의 맹렬한 저항을 받았다. 그 가운데서 총알을 배 정 중앙에 맡았으나 배에 찬 총알 밴드 덕분에 다시 생명을 구한다. 인천 상륙작전과 서울 수복(收復)의 2주기간 동안 두번이나 기사회생함 것이다.

 

서울로 가는 길에 맥아더 장군을 만나 인연을 맺게 된다. 북한 저격수의 사격을 피하게 하고자 맥아더 장군을 밀치게 된 인연으로 잘 알게 됐다. 서울을 탈환한 후 인천으로 돌아가 원산 상륙작전을 위해 다시 배를 탄다. 원산에 도착하여 11월20일경 추수감사절 만찬을 하였다. 원산 상륙시 미국의 유명한 배우 겸 코미디언 밥 호프가 위문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후 장진호 전투에 투입되어 11월28일 중국군이 하갈우리를 공격할 즈음 공병들이 물자공급, 부상병 후송, 그리고 후퇴를 위한 비행장을 건설하였다. 11월30일 East Hill에 진지를 구축했는데 중국군은 평지로 침입함. 12월8일 철수명령에 ‘고도리’에 도착하였고, 거기서 Puller 중령을 다시 만난다.

 

그날 밤은 화씨로 -65도 매우 추운날이었고 하늘이 흐려 공수작전이 어렸웠는데 주둔한 군인들이 기도로 맑은 날씨를 기원하였다. 그 응답인지 하늘이 열리며 큰 별이 빛나는 것을 보았고, 하늘의 응답이라 여긴 해병대원들이 ‘고도리의 별(Star of Kodori)’로 명명하여 뱃지와 기념비를 만들어 그날의 감격을 기념하고 있다.

 

 

 

www.ko.wikipedia.org

 

 

일본에서 다리를 공수하여 설치하는 일에 해병 1사단 공병부대(1st Marine Division Engineer Corp)가 큰 공훈을 세운다. 원산에서 철수하여 12월18일 부산으로 돌아가 재정비한 후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거기서 새로 부임한 8군 사령관 Matthew Ridgeway 를 만난다.

 

1951년 1월말 횡성과 춘천등지에서 중국군을 상대로 싸워 대승을 거둔다. 1951년 3월23일 중기관총 소대를 지휘하다가 손목이 180도 꺾이는 부상으로 후송당해 부산 병원선에서 치료받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다시 해군 조종사로 1년간 훈련받아 조종사가 되는 꿈을 이루고 한국 평택 공군기지에 1954년 돌아와 비무장지대 정찰의 임무를 띄고 근무하다가 1963년, 67, 68, 75년 베트남에 참전한다.

 

리차드 캐리 중장은 저 유명한 인천상륙작전, 원산 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횡성 탈환 전투를 모두 겪어낸 해병대의 잘 알려진 장군이며, 현재 버지니아 주의 해병대 박물관에 장진호 전투 기념탑 건축을 총 지휘하고 있다.

 

 

 

 

 

1983년 해병대 중장으로 Commanding General Marine Corp Education and Development Commander로 전역한다. 1984년 한국에 방문하여 완전히 탈바꿈한 한국을 목격하고 보람을 찾았다.

 

◆ 고도리는 ‘고토리’의 영어표기에서 유래

 

미 해병대에게 ‘고도리의 별’은 기적의 별로 통한다. 대체 고도리는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1950년 11월27일 장진호 주변에 포진한 미제1해병사단은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온 12만 여 명의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낮에는 영하 20도 밤에는 영하 30도의 혹한에서 전투를 거듭한 제1해병사단은 25마일(40km)의 빙판길을 헤치고 간신히 장진호 주변의 고토리(古土里)라는 작은 마을에 진입할 수 있었다. 고도리는 바로 함경남도 장진군 ‘고토리’의 영어 표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11월 30일 오후부터 살을 에이는듯한 강추위와 함께 몰아친 눈보라는 밤이 되도록 그칠줄을 몰랐다. 도저히 포위망을 뚫고 전진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즈음, 갑자기 눈보라가 멈추고 하늘이 열리는게 아닌가. 영롱한 별이 빛나는 것이었다.

 

당시 참전용사들에 따르면 해병대원들은 감격의 함성을 지르고 여기저기서 기도가 울려 퍼졌다. 하늘이 개이면서 공군 전폭기들이 날아와 해병1사단을 엄호했고 단 한명의 부상병도 잃지 않고 흥남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인터뷰 정리 한종우 한국전참전용사 디지털기념관재단(www.kwvdm.org)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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