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당근과 채찍이 필요한 이유
by 한동신 | 11.09.02 00:05

“어이쿠, 단잠을 깨웠지요? 한창 잘 시간인 줄 알면서도.... 지금 런던은 몇 십니까?”

자는 사람 깨워서 시간을 묻는 이 사람은 윤호진 씨다. 뮤지컬 ‘명성황후’로 한국에 뮤지컬의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 한국 뮤지컬의 대부 윤호진 씨는 신나게 자는 나를 전화로 깨워 자신을 소개했다.

1996년, 런던에서 한국예술제 총감독으로 일하는 생면부지(生面不知)인 내게 그가 부랴부랴 전화를 넣은 까닭은 런던에서 한국예술제가 열리는 기간 중에 ‘명성황후’도 바비칸 극장에서 상연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다.

 

윤호진 씨에 의하면 런던의 바비칸 극장 관계자들과 얘기가 꽤 진척되었으니 내가 런던에 있는 동안 상연 스케쥴이 조율(調律)되었으면 한다는 말끝에 “윤 선생님,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세계 초연은 뉴욕에서 해야 될 것 같아요”로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런던이 뮤지컬의 본산지니 뭐니 해도 뉴욕에서 부터 바람을 일으켜야 다른 곳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겠냐는 내 제의를 선뜻 받아들인 그는 “아 그래요, 그럼 뉴욕에서 만납시다”로 흔쾌히 응수했다.

그러니까 1997년 4월 중순, 뉴욕에서 윤호진씨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 긴 얘기를 나눌 시간도 없이 곧바로 ‘명성황후’의 뉴욕공연에 대해 회의를 시작하고 바삐 움직여야 할만큼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스케일이 워낙 큰 공연이다보니 확실한 예산을 잡기가 힘들어 저으기 불안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오는 공연팀 2백여 명의 체재비(滯在費)가 큰 변수로 자리잡자 윤호진 씨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윤 선생님, 진짜 골치 아픈 것은 링컨센터의 노조멤버만을 써야 하니 인건비가 무시무시할거예요. 음향과 조명에 드는 인건비는 나중에 계산하더라도 우선 세트에 들어 가야 할 돈부터 따져 봐야 할 것같아요.”

만만치 않게 전개 될 비용을 염려하는 내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던 윤호진 씨가 “내일 봅시다”하며 자리를 뜨며 돌아서는 축 처진 어깨를 보며, ‘런던에서 공연을 추진하던 사람을 괜히 붙들었나...?’로 슬그머니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한동신 선생, 오늘 링컨센터랑 얘기 끝냅시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커피를 마시는 윤호진 씨의 얼굴은 푸석푸석했지만, 어조만큼은 단호했다. “뉴욕에서 공연하려고 지난 몇 달간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마음을 바꾸겠습니까? 해야지요, 합시다!”

마침내 97년 8월 ‘명성황후’가 뉴욕에서 초연되기까지 윤호진씨의 활약은 정말 눈부셨다. 서울과 뉴욕사이를 이웃집 드나들 듯 오가며 공연전반을 지휘하랴, 끝도없이 들어가는 예산을 마련하랴 동분서주(東奔西走)했다.  

이 와중에 ‘명성황후’의 타이틀 롤이자 간판스타인 Y를 교체하는 문제로 서울과 뉴욕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뉴욕공연을 위해 스타급인 Y보다는 성량이 풍부한 직업가수가 절실했던 윤호진 씨는 마침내 ‘왕과 나’에 출연했던 이태원을 기용했다. 돌아보면 지명도가 없던 이태원에게 타이틀 롤을 준 윤호진씨의 파격적인 결단이야말로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뉴욕공연을 감행했던 그의 뱃심을 보여 준 셈이다.

   

“홍보비 총액이 15만달러라면서요?”

공연을 앞두고 뉴욕타임즈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마케팅을 담당한 나를 향해 던진 질문이다.

뉴욕에서, 게다가 2천 8백석이나 되는 링컨센터 스테이트 씨어터(현 데이비드 코크씨어터)에서 열흘간 공연을 하는 극단의 홍보비라기엔 초라할만큼 빈약한 예산에 놀란 기자에게 “공연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던 윤호진 씨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날이야말로 오케스트라단원들에게 일당을 지불하고 통장이 바닥이었던 날이었다. 요새 한국에서 스타가 된 박칼린 씨가 음악감독이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다. 아버지가 한국분이고 어머니가 ‘파란 눈의 며느리’로 유명한 박칼린 씨는 당시 30대 초반으로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여성이었다. 한국뮤지컬사상 뉴욕에서 최초로 공연되는 ‘명성황후’였던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꿋꿋하게 잘 견뎌 낸 대단한 여성으로 기억하고 있다.

‘명성황후’ 뉴욕공연은 빠뜻한 예산과 시차에 시달린 단원들의 강행군(强行軍)으로 버티며 치뤄 낸 버거운 잔치였다. 거듭되는 넌센스를 깨고 넘으며 마침내 성공을 거둔 뉴욕공연. 그 이후 ‘명성황후’공연은 계속되고 있다고 들었다.

 

photo by 김치김

그 ‘명성황후’의 신화를 이룬 윤호진 씨가 의사 안중근의 서사시 ‘영웅’을 뉴욕에서 상연하고 있다. 한국에서 온 기자들이나 뉴욕의 한인매체 기자들은 일제히 “찬사와 기립박수를 받은 작품”,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겨루어 손색없는 작품” 등 약속이나 한 듯 찬사일색으로 포장(包裝)하고 있다.

작은 나라 한국에서 인정받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윤호진 씨의 창작력은 언제나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뉴욕에 도전장을 낼 때는 제대로 된 기획력, 즉 세계인의 구미에 맞는 뮤지컬을 만들어 그에 걸맞는 마케팅이 이뤄져야 한다.

 

photo by 김치김

초청된 인사와 한인관객들로 가득찬 첫 공연, 객석에서 터져 나온 환호에 28억의 제작비가 투여된 ‘영웅’은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하고 눈 먼 애국심에 묻힌 꼴이 되고 말았다. 작품에 대해 전문적인 분석이나 비평 없이 일제히 찬사로 도배(塗褙)하는 이 현상은 과연 무엇일까? 연출가 윤호진 씨의 말처럼 “공연 전회가 매진되도 11억을 손해 보는” 이 무모한 도전에 한국의 언론은 왜 합세하는 것일까?

한국창작뮤지컬은 아직 브로드웨이에 진출하지 않았다. 링컨센터는 뮤지컬극장이 즐비한 ‘브로드웨이’가 아니라 뉴욕의 브로드웨이 63가에 있기 때문이다. ‘영웅’에게는 제대로 된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 ‘브로드웨이 진출’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분석과 정직한 평가가 절실히 요구된다.

by 김희범 2011.09.02 13:13
옳으신 말씀입니다..어떤 미디어도 언급하지 않은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셨네요...당근만 던져주는 언론이 너무 많습니다.. 사랑의 채찍으로 진짜 브로드웨이에 우리의 창작 뮤지컬을 올려야 할 것입니다.
by 방연직 2011.09.02 13:58
다녀온지 불과 몇시간 안됀다. 누구의 평, 뉴욕타임즈 평도 읽어 보지 않고 갔다.  블랭크 슬레이트가 언제나 제일 좋다. 기대한 것 보다 좋았다. 물론 할말은 많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애크로배딕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가수들의 음정이 좋아서 너무 다행이었고. 그래도 명성황후때 보다 어떻게 보면 할아버지다. 무엇보다도 우리 애들에게 더 좋았던것 같다. 부모로서 뭔가 보여준 느낌 같은것.... 우선 주류 신문에서 다루었다는 사실이 좋았고. 뉴욕타임즈 평은 좀 스케치한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가끔  그렇듯이.

정말 유명하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정말 정말 재미없이 본 것이 많다. 솔직한 고백이다. 유명하다니까 본거지. 그래서 평소에 영화나 오페라를 더 좋아한다. 적어도 스피드 면에서 좀 그런 부분이 있지만, 장르자체의 한계가 있는 것이니 ... 정말 유치한 뮤지컬 보다 훨 좋았다. 물론 유치함 그 자체가 예술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니겠지지만. 불멸의 이순신 이라는 드라마 생각이 난다.  실패한 드라마 중에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데. 그러나, 할 말이 없는 것이 이순신 장군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이 볼 수밖에 없다.

안중근이란 컨텐츠 자체가 풍부하기 때문만 이란 말 은 아니지만. 위에 드라마와 비교 했을 때 훨씬 좋았다. 정말 중간에,.... 이건 아닌데 가 좀, 어떻게 보면 많이 있었지만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고. 정말 굵은 선을 보았을 때 좋았다. 작품이 좋았지만 감동이 약할 수 있는데 감동 면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다.

한국말로 불렀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좋았다. 만약 영어로 불렀다고 하면 정말 나이트메어 였을 것이다. 무슨 퓨전 한식 요리도 아니고. 한국말 자체가 주는 무언가가 있다.

정교한 부분이 좀 있었다. 그것을 더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의 뮤지컬 인더스트리가 많이 발전했다는 흔적도 엿보였다. 난, 기차씬이 좋았어요. 얼반씬 역시 좋았고.
by 이계선 2011.09.05 23:48
몇년전 까지만 해도 한국무대는 빼놓지 않고 깡그리 봤습니다. 엄정행의 목련화에서 부터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까지. 애국심(?) 때문이죠. 그런데 명성황후를 보고는 실망했지요. 기억에 남을 만한 독창이나 합창이 없이 나무 요란하기만 하더라구요. 그에 비하면 "울고 넘는 박달재"는 짜임새와 감동이 가득찬 영양가 있는 연출로 보이던데. 이민오기전 한국에서 본 "한네의 승천"이나 "아가씨와 건달들"(한국배우출연)도 좋기만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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