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 승선기’ 다시 찾은 나침반(2) 황우석이 누구야
by 한동신 | 11.06.08 04:03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한국여성포럼의 주제가 되는 이 제목이 ‘여성포럼’의 주축(主軸)을 이루는 여성들에게나 남자들에게 전혀 어필하지 않았다.

“갑자기 여성행사에 왜 남자들을 초청하는거야?”

“황우석이 누구야?”

  

행사를 함께 하는 스탭들에게 행사의 윤곽(輪廓)을 전하자 질겁을 하며 모두들 배반감(?)마저 느끼는지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여성이 자기 자신을 알기위해서는 바로 다른 문화인 남성을 알아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단한 자신감으로 행사를 기획했던 나는 큰 실수를 한 듯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동이 걸린 행사이고 앞으로 달리는 일만 남았다는 판단아래 나는 2부행사에 패널리스트를 섭외하기 시작했고 후원자들을 만나는데 매진했다.

사회에 봉사하시는 분들은 왜 이렇게 모두 겸허하신걸까? 좋은 분들의 추천(推薦)으로 패널리스트 후보분들을 만나서, 행사의 취지를 말하고 패널리스트를 섭외를 하면 번번히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행사의 큰 제목은 ‘한국여성포럼’인지라 남성패널리스트후보들이 되기를 꺼려했다. 한편, 이제껏 행사를 후원하던 기업이나 후원자들이 행사의 방향이 바뀐다는 생각에 후원하기를 꺼렸다. 사면초가(四面楚歌)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생긴 사자성어(四字成語)일까?

행사는 아무 진전 없이 몇 달이 흘렀다. 무슨 배짱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황우석 박사를 초대한걸까? 조바심이 생기자 내가 저지른 행동에 대해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나의 장점 중에 하나는 저지른 일에 반드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이 심한 벌이든 손가락질이든 달게 받는 것에 철저히 훈련된 나는 행사를 기획하며 내가 잠근 첫 단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한국여성포럼’은 내가 운영하는 기획사 ‘오픈 워크(OPEN WORK)’가 1997년에 시작한 연례행사다. 1986년부터 뉴욕을 비롯해 미 전역에 한국 문화, 예술을 알리고자 만든 오픈워크는 당시만해도 한국문화, 예술을 알리는 창구가 없었던지라 독보적인 존재였고, 그래서 할 일이 참 많았다.

재정적으로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믿을 수없을만큼 쓰러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와 ‘오픈워크’를 둘러싼 근거없는 소문들도 무성했던 때였다. 나는 ‘상당한 재력가의 딸,’ 또는 ‘세도가의 현지처(그당시 나는 골드 미쓰(?)^^였음)’로 변신해 있었고, ‘한인사회가 처음 갖게 될 시의원’ 등등 나와 걸맞지도 않을 ‘정치적 야욕(野慾)을 가면(假面)에 숨기고 문화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오인되었던 시간. 나의 아버지는 재력있는 사업가도 아니며, 고약한 성미에 수수팥떡같이 생긴 나를 현지처로 둘만한 얼간이부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내가 뉴욕에 머물게 된 계기에 대해 쓰겠지만, 영화평론을 공부하고 서울에 돌아가 후학양성에 전념해야겠다고 결정했을 때, 뉴욕이 내 발목을 잡은 계기를 돌아 보면 내 뜻이라기보다는 하늘의 뜻이었다고 믿고 있다.

80년대 중반, 뉴욕에 한인예술가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을 뒷받침할만한 단체나 재원(財源)은 한군데도 없었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는 몇 사람이 한인예술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뜻을 모았고, 처음엔 모두들 의욕을 갖고 덤벼들었지만, 벌이가 없자 이내 사라졌다.

나 역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건가?’ 하는 회의가 들었지만 ‘너는 할 수 있어! 네가 해야 해!’ 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힘이 내 등을 떠밀었다. 동서남북을 모르고 설칠 때라 돈 걱정보다 기획의 의미를 생각하고 허무맹랑하리만치 대형기획을 해도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정말 그 일이 일어났다.

 

맨하탄 다락방같은 내 사무실에서 밤잠을 안자고 일에만 매달리며, 스스로를 ‘원더 우먼’으로 믿고 있었다. 그렇게 일하면서 지금도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택할 수 있다면야 그보다 더 축복받은 일은 없겠지만, 대부분의 일이란 ‘주어지는 일’이니만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대단히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 황우석 박사(위로부터)가 초대되기에 앞서 ‘한국여성포럼’에는 김지미 씨를 비롯, 김남조 씨. 고은정 씨, 박완서 씨, 신성일-엄앵란 부부 등 한국에서도 만나기 힘든 분들이 연사로 참석하여 행사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한인사회의 개구장이’였던 내가 ‘한국여성포럼’이라는 여성행사를 만든다고 하자 모두들 배를 잡고 웃었다. 이민사회에 사는 한국여자들은 꿈도 꾸어서 안된다는 듯이 어두웠고 어찌 보면 삶을 놓아 버린 듯 지쳐 있었다.

이 꼴을 우리의 원더우먼 한동신이 보고만 있었겠는가? 이리하여 여성포럼은 탄생했고, 사실 속트고 지내는 여자라곤 한 명도 없이 막을 올린 ‘한국 여성포럼 1회: 미국 속의 한국 여성’은 대성황(大盛況)을 이뤘다. 그 기세를 몰아 드디어 황우석 박사 초청까지 이르게 되고 어두운 터널로만 빠지는 ‘여성포럼’에 한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 ‘뉴스로’ 승선기-3편에서 계속됩니다.

by 김성아 2011.06.09 01:44
선생님, 수수팥떡이라뇨.. 제가 선생님 연배의 남자였다면 짝사랑으로 끙끙앓다가 청혼했을겁니다.
by 한동춘 2011.06.09 08:40
우와 ! 원더우먼 한동신 ! 아자아자 ! ^___________________^
by 앤드류임 2011.06.10 08:22
수수팥떡에 대해 기억이 안나는데 그게 안이쁜떡이죠? 그런데 선생님이 그런 외양이시면 수수팥떡은 이쁘게 생겨야 맞는건데...가치관에 혼란이 오고 있으니 설명 바랍니다. ㅋㅋ 원더우먼 부분은 강추!!! 문화계의 원더 우먼, 한동신!! 근데...그럼...총알도 막으시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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