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글로벌웹진 ‘뉴스로’를 얘기하려면 ‘뉴스로’호의 선장인 노창현 대표에 대해 먼저 얘기를 꺼내야 할 것 같다.
노창현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6월, 내가 운영하는 기획사, ‘오픈 워크’가 주최하는 연례행사인 ‘한국여성포럼’ 행사장이었다.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제목으로 열린 ‘여성포럼’은 그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줄기세포의 선구자 황우석 박사의 기조연설(基調演說)을 중심으로 방지각 목사, 김기수 신부, 김영덕 박사, 박용관 박사 등 사회 각계, 각층에서 그야말로 인류복지에 기여하는 분들이 연사로 참석했다.
주최자인만큼 행사장에 일찍 도착한 내게 행사의 사회를 맡았던 송정아 씨가, “우리 국장님이 와 계세요” 했다. 송정아 씨는 그 무렵 뉴욕에 진입하여 세력(?)을 확장하려는 ‘스포츠 서울’의 기자였고, 송 기자가 말하는 ‘우리 국장님’이 바로 노창현 씨였다.
노창현 국장이 행사장에 와 있다는 전갈(傳喝)을 받자 저절로 내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여성포럼’ 행사에 대한 보도자료가 언론사에 나가자마자 황우석 박사와 이 행사에 대해 적극적이고 세밀하게 보도했던 ‘스포츠 서울’의 국장의 입김이었음을 알고 있던 나는 노창현 국장에게 단걸음으로 달려갔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인지도가 전혀 없던 황우석 박사를 초대해 놓고는 행사가 홍보가 되지 않아 조바심을 칠 무렵, ‘스포츠 서울’은 다른 언론보다 한걸음 앞서, 주최자인 나와, 황우석 박사 그리고 ‘한국여성포럼-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주었다. 덕분에 여러 번 나를 찾고 전화를 주었던 ‘스포츠 서울’의 활발하고 똑똑한 송정아 기자를 사회자로 정하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노창현 국장의 첫 인상은 후리후리한 키에 깨끗한 피부로 고등학교 체육선생같았다. 스포츠에 대한 상식이 제로인 나는 스포츠신문의 국장과 할 말은 없었지만, 만나서 반갑다, 행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주셔서 고맙다 정도의 인사가 노 국장과 나눈 말의 다였던 것 같다.
지금은 뭔지 모를 기승전결(起承轉結)로 인해 ‘세기의 사기꾼’이 된 황우석박사가 기조연설자로 초청된 사연은 이렇다. 이제는 신문대신 포탈사이트를 샅샅이 훑고 있는 나는, 줄기세포연구를 위해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연구하는 한 교수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황우석 교수의 하루는 새벽 4시 반에 시작된다. 그는 기상과 함께 대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국선도 수련원에서 1시간 명상을 한 뒤, 정확하게 6시에 학교에 출근하며 보통 밤 12시가 넘어 귀가한다.” 그는 연구의 기본이 되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원칙 있는 일상과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린다고 했다.
2003년, 그 무렵 나는 내가 하는 일과 내가 아는 사람들과 내 자신에게 지쳐 있었다. 한국 문화, 예술을 미국 땅에 뿌리내리고자 꾀부리지 않고 정열을 바치건만 여전히 중심에 들지 못하고 변죽을 울리기만 하는 내 일, 미국인들보다 더 심한 편견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 보는 한인사회 사람들, 그리고 밤낮이 바뀐 나의 생활이 몰고 오는 스트레스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을 무렵, 황우석 박사의 규칙적이고 구도자적인 자세는 내게 큰 의미로 닿아 왔다.
게다가 줄기세포와 관련된 과학용어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프로파갠더가 되어 버린 ‘생명’이란 단어가 정말 생명력을 되찾아 숨 쉬며 튀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황 박사가 참 만나고 싶었다. 서울대 교수라 연락하기 어렵지 않았고, 그동안 해온 ‘한국여성포럼’ 자료를 보내고 전화를 하니, 황박사는 믿을 수 없을만큼 선뜻 참석하겠노라고 승낙을 했다.
황박사가 초대에 응한 뒤부터 행사준비는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뉴스로 승선기’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