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데이트’의 윤영아 미국을 매료시키다
by 앤드류임 | 24.06.11 19:36

공연 모노드라마 <규금아 나는> 감동

 


 

미니데이트로 요즘 새롭게 인기 상승 중인 가수 윤영아의 자전적 뮤지컬 모노드라마 <규금아 나는>이 필라델피아를 시작으로 뉴욕, 뉴저지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막을 내렸다.

 

윤영아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의해 한국의 가요계가 점령 당했던 90년대 초, ‘미니데이트를 히트시키며 각종 가요 순위 상위권에 오른 몇 안 되는 여자 가수였다.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KBS 청소년 창작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대학 입학과 동시에 미니데이트를 발표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윤영아는 뛰어난 가창력과 춤 실력으로 가요계의 주목을 받았다. 가창력보다는 청순 또는 섹시한 외모가 여자 가수들의 인기를 좌우하던 시절, 윤영아는 당시로서는 비교될 여자 가수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가창력과 정형화되지 않고 자유롭게 리듬에 몸을 맡기는, 당시로서는 미국의 팝 가수들에서나 볼 수 있었던 뛰어난 춤 실력을 겸비해, 대형 가수의 탄생을 기대케 했다. 당시 윤영아가 한국의 머라이어 케리 또는 한국의 휘트니 휴스턴으로 자주 소개됐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윤영아에 의해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소개된 씨티팝 장르의 곡, ‘미니데이트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승승장구(乘勝長驅)하던 윤영아의 뒤에는 숨은 조력자요 든든한 후원자인 그녀의 어머니가 있었다. 가수로서의 꿈을 키우도록 늘 격려와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고, 가수가 된 이후에는 매니저로서 윤영아를 가까이서 돌보시던 어머니는 윤영아에게 정신적인 언덕이었고 그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멘토였다. ‘미니데이트와 후속곡들의 연이은 발표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그녀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던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일찍 세상을 뜨면서, 윤영아의 불행이 시작됐다. 매니저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시던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윤영아는 연예계의 냉혹한 현실 속에 버려지듯 홀로 남겨지게 된 것이다.




속된 말로 잘나가던윤영아에게 접근해 온 다수의 연예기획사 중 하나와 계약을 맺으면서 그녀의 악몽 같은 연예계 생활이 시작된다. 당시 만연했던 연예기획사의 횡포와 착취에 윤영아는 가수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이는 여자 가수, 특히 댄스 가수에게는 너무나 치명적인 긴 공백 기간으로 이어지게 된다. 연예기획사의 횡포에 저항하며 가수 활동에 제동이 걸리고 이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렵게 된 윤영아에게 이 시기 그녀의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칠갑산>의 작곡가 조운파선생과의 만남이다. 이 만남은 윤영아에게 삶의 크나큰 위기 속에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는 일생일대의 계기가 되었다고 윤영아는 술회한다.

 

이후 윤영아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변호사도 선임하지 못하고 홀로 벌인 기획사와의 법정 투쟁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하지만, 그로 인한 오랜 공백은 댄스가수였던 윤영아에게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소송으로 보낸 세월 동안 대중에게 잊힌 윤영아는 일식당 웨이트리스와 마켓의 과일 코너 등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게 된다. 하지만 윤영아는 그러는 동안에도 크고 작은 행사에 출연하며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고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윤영아에게 제2의 전성기를 가져다준 기회가 찾아온다. 최근 인기 음악 프로그램인 싱어게인 시즌 150호 가수로 출연해, 오래전 자신의 히트곡이었던 미니데이트를 불렀고 윤영아는 다시금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기회도 준비된 자의 것윤영아가 싱어게인을 통해 대중에게 다시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쉼 없는 노력과 자기 관리를 통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대를 떠나지 않고 노래를 불렀고, 그로 인해 젊은 시절 못지않은 가창력과 댄스 실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철저한 자기 관리는 성형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20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 놀랍도록 젊어 보이는 외모와 몸매를 유지하는 데에도 크게 한몫했다. 이후 윤영아는 복면가왕(환승이별 분), 열린음악회 등 인기 음악 프로그램들에 출연하며 대중가수로서의 재기에 성공,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규금아 나는>은 바로 이런 윤영아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 역정에 바탕을 두고 탄생한 뮤지컬 모노드라마다. 윤영아의 인생 스토리를 알게 된 필라델피아의 S&S드림 파운데이션 심수목대표가 모노드라마로의 제작을 전격 추진하고 공연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지난 511일 필라델피아 에버그린 센터에서 막을 올린 <규금아 나는>은 첫 공연부터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윤영아의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가창력은 관객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고, 이에 더해 대중은 전혀 알지 못했던 뛰어난 연기 실력까지 발휘해 관객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인기 방송 프로그램들을 통해 이미 검증된 윤영아의 노래 실력이야 당연하게 여겨질 만하지만, 그녀의 연기 실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관객들은 노래만큼 관객을 압도하는 윤영아의 연기에 감탄과 감동을 넘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군다나 엄청난 대사의 양과 다양한 표현을 혼자서 연기해 내야 하는 모노드라마를 한 시간 반 동안 이끌어 나가면서도, 마지막 대사 한마디까지 에너지를 잃지 않은 열연은 관객들을 압도하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사실 <규금아 나는>은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 손현주가 윤영아의 연기를 지도해 공연 전부터 화제가 된 바 있다. 대배우 손현주의 특급 지도와 윤영아의 연기에 대한 재능 그리고 피나는 노력이 합쳐져, 본업인 노래 뿐 아니라 연기까지 잘하는 가수 겸 배우 윤영아가 뮤지컬 모노드라마 <규금아 나는>을 통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관객들의 엄청난 환호와 박수갈채는 윤영아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열광적이었다. 윤영아의 피아노 연주로 시작된 첫 곡부터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은 공연이 끝나고 앵콜 곡들이 불릴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윤영아의 실제 친구인 제목 속의 규금은 무대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규금은 다름 아닌 관객들이다. 다시 말해서 규금은 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 한사람 한사람이 규금이 되어 객석에 앉아 윤영아의 얘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무대 앞 부분에 등받이가 객석을 향한 채 놓여있는 빈 의자-규금이 앉은 것으로 설정된-는 바로 이를 암시한다. 윤영아의 노련한 유도로 자신들이 규금임을 깨달은 관객들은 작가의 이 계획된 설정에 빠르게 적응하여 무대 위 윤영아의 친구가 되고 그녀의 얘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울고 웃는다. 윤영아가 친구인 규금을 대하듯 존칭도 경어(敬語)도 없이 관객에게 질문을 하자 관객 중 일부도 역시 친구를 대하듯 무대 위의 윤영아에게 반말로 대답을 하는 광경이 벌어지고 이에 수줍어하던 관객들도 이내 웃음을 터트린다. 연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를 가수 윤영아는 그 어떤 노련한 배우보다 능숙하게 관객들에게 선사한 것이다.




윤영아가 극 중에서 절망에 빠지고 슬퍼할 때 객석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관객들이 보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영아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삶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장면에서는 박수와 환호로 응원을 보냈다. 윤영아가 일식당에서 일할 때의 상황을 재현하며, 그날 많이 팔아야 할 요리(도미 초밥과 회)를 손님에서 권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그녀의 재치에 폭소를 터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본업인 노래가 아닌 전혀 다른 생업에 그토록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해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보통 뮤지컬에서 노래가 끝난 후 박수가 나오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관객들이 배우의 연기만을 보고 박수를 보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감탄을 자아낼 만한 연기를 배우가 보여줄 때에나 가능한, 여간해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윤영아가 일식당에서 일하던 시절을 재현하는 플래시백 장면에서 바로 이런 광경이 만들어졌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힘들던 시절의 상황을 능청스럽고 코믹한 연기에 담아낸 윤영아의 명연기에 관객들이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를 보낸 것이다. 이 환호와 박수는 관객들이 윤영아에게 보낸 뜨거운 응원의 메시지였다.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믿음과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고 마침내 기획사와의 소송에서 승리한 윤영아가 관객들에게, 과연 자신이 소송에서 이겼을지 졌을지를 묻는 장면은 연극의 묘미를 한껏 느끼게 해준 이 공연의 백미(白眉)였다. 윤영아가 내가 소송에서 이겼을까 졌을까?’하고 규금, 즉 관객들에게 묻자 여기저기서 다른 대답이 나왔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겼을 것이라고 답하는데, 일부에서는 졌을 것 같다는 대답이 나오기도 했다. 이 비율이 매 공연 달랐다는 사실은 공연을 리뷰하는 사람에게 흥미롭다. 한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대답을 망설이며 반응에 소극적이자, ‘내가 졌을 것 같다는 규금이 손들어봐라며 관객들의 대답을 유도한 윤영아의 애드리브(ad lib)가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관객들은 30년 넘게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 온 윤영아의 노련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윤영아가 얼마나 무대를 장악하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는지 보여주는 예다. 소송에서 이긴 윤영아가 맞아 내가 이겼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매 공연 예외 없이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이라이트는 재기한 윤영아의 최근 활동이 영상으로 보여지고 영상 속에서와 같은 모습으로 윤영아가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의상을 갈아입은 윤영아가 <미니데이트>를 부르기 전 한 손을 들어 올리고 서 있는, 이른바 시그니처 정지동작으로 조명 속에 모습을 드러내자 중년층이 주를 이뤘던 객석에서는, 마치 청소년 관객들 앞에 아이돌스타가 등장할 때처럼 열광적이다 못해 비명에 가까운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커튼 콜에 이어 앵콜곡들이 불릴 때는 윤영아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객들의 함성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윤영아가 이미 규금이 되어 객석에 앉아 있던 관객들을 향해, “규금아 나는그분이 가라시는 이 길을 갈 거야. 너도 같이 가지 않을래?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라며 마지막 대사를 하자 숙연해진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윤영아에게 경의를 표했다.

 

<규금아 나는>은 이렇듯 매 공연 뜨거운 호응과 화제 속에 막을 내렸다. 역경 속에서도 노래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다시 찾은 윤영아, 그런 그녀가 배우로서도 멋지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내는 감격적인 무대였다.



 


공연 후 윤영아는 뉴욕과 뉴저지 지역의 여러 교회로부터 간증과 찬양 그리고 강연을 위해 초청받아 한 달의 방문 동안 빠듯한 일정을 소화했다. 때문에 유명 연예인이 행사나 공연을 위해 미국을 방문할 때 흔히 주최 측이 접대 격으로 마련하는 관광코스도 마다하며, 윤영아는 연습과 컨디션을 최상으로 맞추는데 몰두했다. 스태프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윤영아는 프로 중의 프로였다. 자신의 일에 한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프로의 자세윤영아가 숱한 난관을 이겨내고 어떻게 뛰어난 가창력과 춤 실력을 지금까지 유지하며 재기할 수 있었는지, 또 어떻게 처음으로 도전한 모노드라마에서 수많은 관객들을 열광케 하고 감동시킬 수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공연에서는 물론이고 가는 곳마다 윤영아의 찬양과 간증, 강연에 큰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으며, 윤영아를 모르던 사람들도 이내 팬이 되었다는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윤영아가 미국 방문을 통해 남긴 감동과 여운 그리고 그녀의 선한 영향력은 한동안 미국의 동포 사회에 남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것으로 보인다.

 

윤영아는 이렇게 미국을 매료 시키고 한국으로 떠났다.

 


윤영아와 s&s 드림 파운데이션의 심수목 대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앤드류임의 뒷골목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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