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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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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향한 질주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18-08-07 (화) 12:47:08


0729 달려라 히마찰.jpg

      

제 날짜에 집에 가기는 글렀다. 발이 묶였다. 일이 꼬이려니.

그동안 피곤했었나보다. 아침까지 계속 잤다. 꿈도 꾸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침에 어제 만난 남미 트럭커가 문을 두드려 일어났다. 트럭을 빼려는데 아무래도 부딪힐 것 같으니 조금만 옆으로 움직여 달라는 얘기다.

 

나도 준비 후 발송처로 향했다. 아뿔싸 방향을 미리 확인 안 한 탓에 트럭스탑을 나와 우회전했다. 좌회전 했어야 하는데. 중간에 유턴을 할 수는 있었지만 시간과 거리가 기준을 초과해 오프듀티가 드라이빙으로 바뀌어버렸다. 일을 일단 시작했다면 10시간 휴식을 취하지 않는 이상 14시간 후에는 무조건 멈춰야 한다. 가급적 일을 늦게 시작하려 했는데 할 수 없다.

 

발송처에 도착해 체크인 하고 사무실로 가니 노스캐롤라이나로 가는 화물 맞냐고 묻는다. ? 아닌데. 난 메사추세츠로 간다. 내가 준 번호는 노스캐롤라이나 체리포인트로 간다며 서류를 보여준다. 그랬다. 심지어 회사 이름도 달랐다. 이런 황당한 상황이 있나. 디스패처에게 문자로 연락했다. 주말 디스패처는 오늘 세 플릿을 담당하기에 가급적 전화 말고 메시지로 보내달라고 아침에 문자가 왔었다. 알아보겠단다. 시간이 지나도 답이 없어 다시 보냈더니 고객팀에 확인 중이란다. 일요일이라 확인이 안 될 것 같다. 오후 5시가 넘어 글렌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무래도 내일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내 시간은 누가 보상하나? 게다가 내일은 집에 도착하기로 한 날이다. 이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잘 가도 화요일, 아니면 수요일이다. 그나마도 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내일 어떤 화물을 받든 핏스톤 터미널에 내려놓고 버스 타고 갈 생각이다.

 

페북 그룹 게시판에 올렸더니 여기(그린필드)서 그런 일이 종종 있다고 했다. 오호 통재라.

 

 

달려라 히마찰

 

 

새벽 3. 문자가 들어왔다. 메사추세츠 윌밍턴이 배달지가 맞다는 확인이다. 발송 사무실로 가 서류를 받았다. 서류의 주소는 노스캐롤라이나 체리포인트로 돼있다. 페북 그룹 게시판에서는 빌링 주소와 발송 주소가 다른 경우라 했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히마찰 왼쪽에는 다른 프라임 트럭이 서 있다. 같은 인터내셔널 제품이지만 풀사이즈 콘도다. 그 운전자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어제부터 기다리고 있다. 결국 내가 먼저 가는구만. 빈 트레일러를 내려 놓고 운반할 트레일러를 찾아 연결했다.


20180717_123858.jpg

 

여기서 배달지까지는 약 950마일, 19시간 운전거리다. 아무리 빨리 가도 내일 오후 2시 정도에나 도착 가능하다. 더 늦을 수도 있다. 핏스톤 터미널까지 거리를 계산해봤다. 600마일. 12시간 거리다. 트럭은 시간 계산할 때 평균 시속을 50마일로 잡는다. 히마찰의 최고 속도는 62마일. 내리막에서는 76마일까지도 나온다. (그 이상은 달려보지 못 했다. 78마일을 넘으면 경고 메시지가 온다고 들었다. 게다가 미친 짓이다.) 오르막에서는 15마일로 떨어지기도 한다. 도시 인근이나 공사구간에서는 55마일, 때로는 45마일 제한속도다. 때론 교통정체도 따른다. 이 모든 변수를 고려해 50마일이 현실적인 속도다. 하루에 운전할 수 있는 시간은 11시간. 나는 무리 하기로 했다.

 

평소와 달리 운전했다. 히마찰이 달릴 수 있는 최대 속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55마일 구간에서도 62마일로 달렸다. 내리막에서는 가속도를 최대한 이용했다. 그 결과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 나왔다. 히마찰이 다른 차량을 추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일반 승용차를. 1차선으로 달리는 시간도 역대 최고다. 히마찰도 놀랐을 것이다. 내가 다른 차량을 추월할 수 있다니. 그래 히마찰 원래 너는 더 빨리 달릴 수 있어. 소프트웨어로 속도가 제한됐을 뿐이야. 히마찰이 나중에 중고로 팔리면 속도 제한도 해제된다. 그때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것이다. 오르막 출력 부족은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이 모델이 힘이 약한 것인지, 뭔가 히마찰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중간에 주유소에서 글렌에게 문자를 보냈다. 핏스톤 터미널에 트레일러 내려 놓겠다. 알았다 언제까지 올 수 있냐? 400마일 남았고, 오후 6시 전후로 갈 수 있다. 오케이. 와라.

 

70번 도로를 따라 인디애나에서 출발해 오하이로를 거쳐 웨스트 버지니아에 들어서자 산악지형이 시작됐다. 얼마 후 펜실베이니아에 접어 들었다. 핏스톤까지는 300마일이 넘게 남았다. 산악 지형으로 가야 할 거리가 그만큼 남았다는 뜻이다. 11시간 내 도착은 틀렸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자.

 

펜실베이니아는 산악 지형으로 인해 맑은 날에도 어느 구간에서는 꼭 비가 내렸다. 오늘 같이 흐린 날에는 말할 나위 없다. 지독한 폭우였다. 라디오와 휴대폰으로 홍수 경보 메시지가 들어왔다. 앞이 안 보였다. 그래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트럭은 일반 승용차보다 시야가 높아서 좋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길 가에 트럭을 세우고 생수병에 소변을 봤다. 아까 오하이오에서 주유를 위해 트럭을 세운 이후 두 번째 정차다.

 

목적지 18마일을 남겨 두고 11시간이 끝났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어서 트럭을 멈추자 숫자가 0이 됐다. 신기한 일이다. 어찌 이리 딱 맞았을까. 마지막 카드를 써야 할 때다. 오프 듀티 드라이빙. 하루에 1시간 쓸 수 있다. 업무에 사용하면 안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의 사용은 가능하다.

 

핏스톤 터미널 거의 다 와서 전화가 왔다. 뭐야 운전 중에. 스피커폰으로 받았더니 야간 디스패처다. 잘 안 들린다. 잠시만 기다려라. 다 왔다. 터미널 입구에 도착해 트럭을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터미널 말고 근처 파일럿 트럭스탑으로 가라는 얘기다. 뭐여. 지금 도착했는데. 리파워 할 트럭이 터미널로 못 온다고 했다. 나도 시간 다 돼서 오프 듀티 드라이빙 중이다. 거기까지 못 가냐? 가깝다. 시간을 보니 20분 조금 넘게 사용했다. 가능할 것 같다. 알았다. 거기서 교대하겠다. 트럭을 돌려 트럭스탑으로 향했다. 거리가 2마일 이내라 오프듀티가 풀리지 않았다. 트럭스탑은 좁고 트럭들로 가득했다. 전화를 걸었다. 후안(Juan) 어디에 있냐? 나 트럭스탑에 막 도착했다. 난 아직이다. 2시간 거리에 있다. 뭐여? 그럼 터미널로 오지 왜 여기서 보자고 했냐? 내 트럭이 터미널로 가면 엔진오일을 갈아야 한다. 그러면 내일 아침까지 운행 못 할 수도 있다. 야 지금 여기 꽉 차서 주차할 곳도 없다. 그리고 나 집에 가야 한다. 그러냐 그럼 터미널에 내려놔라. 어떻게든 되겠지 뭐. 이런 진작에 그러지. 바쁜 사람을 더 일 시키네.


20180725_164109.jpg

 

터미널로 돌아갔다. 인바운드 베이에서 점검 요원이 묻는다. 이 트레일러 내려 놓을거냐? 킵 할거냐? 내려놓을 거다. 서류는 어디다 주면 되냐? 나한테 달라. 트레일러는 어디다 내려 놓을까? 빈 곳 있으면 내려 놔라.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핏스톤 터미널은 스프링필드는 말할 것도 없고, 솔트레이크시티 보다도 작다. 이리저리 돌다 간신히 한 자리를 발견했다.

 

거의 한 달만의 귀환이다. 히마찰을 몰고 처음 이 곳을 나섰을 때와 지금 돌아온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됐다. 한 달간의 혹독한 실전은 나를 단련시켰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현장에서 살아 남았다. 한 달 전이었다면 혼자 못 댔을 자리에 오늘은 혼자서 주차했다. 어제 컨펌 기다리며 예전에 본 후진 강의 동영상을 다시 봤다. 네이슨도 내게 가르쳤던 내용이다. 그때는 이해 안 됐던 부분을 이제는 알겠다. 주차 공간에서 왼쪽으로 꺾어 직선을 만든 후 후진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아까 주유소와 지금 터미널에서 사용했다. 이것도 신기한 일이다.

 

밥테일 주차 할 자리도 한 곳 남아 있었다. 시간은 7시가 조금 넘었다. 뉴욕행 버스 시간을 알아봤다. 8시가 막차인데 시간이 임박해 예매가 안 됐다. 출발지에서 다음 정류장인 스크랜튼을 살펴봤다. 830분 출발인데 예매가 가능했다. 얼른 예매하고 셔틀버스에 전화했다. 나 스크랜튼 버스터미널에 가야 한다. 언제 가능하냐? 8시에 가능하다. 30~40분 정도 걸릴거다. 더 빨리 안 되냐? 셔틀버스 기사에게 연락할 수 없냐? 셔틀버스 기사는 오전 7시에서 오후 7시까지 일하고 그 이후에는 경비인 내가 운전하는 것이다. 그제서야 여기 시스템이 이해가 됐다. 왜 지금까지 맨날 그 새벽에 나 혼자 셔틀버스를 타고 오갔는지. 알겠다. 나는 우버 앱을 켰다. 주변의 차량이 표시됐다. 오는데 7분 정도 걸리고 우버 X 요금은 22달러 정도. 나쁘지 않다. 트럭 청소도 못 하고 필요한 짐만 급하게 챙겼다. 원래는 터미널에서 샤워도 하고, 식사도 하고 여유롭게 출발할 계획이었다. 막차가 이렇게 일찍 끊어지는 줄 몰랐다. 게다가 쓸데 없이 트럭스탑 다녀오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차량은 벤츠 SUV였다. 원래는 럭셔리급이지만 콜이 없으면 가장 싼 X급 요금에도 응한다. 나로서야 원하는 장소까지만 가면 되니까 상관 없다. 운전사는 자기는 외곽에서만 일한다 했다. 시내에는 잘 안 들어간다고. 뉴욕과 달리 이곳 같은 소도시에서는 별 다른 라이센스 없이 우버 운전을 할 수 있다. 12시간 일하고 6시간 쉬면 된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옐로캡 운전사로서의 자존심도 있고 해서 우버를 이용하지 않았다. 트럭을 하면서 네이슨과 몇 번 우버를 이용했다. 나 혼자서도 이번이 두 번째다. 우버 때문에 옐로캡을 그만 두고 트럭을 시작했는데 정작 우버의 도움을 받는다. 솔직히 말해 우버가 편리하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소도시에서는 특히 그렇다. 승객들이 이런 편리함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

버스는 예정시간에 왔다. 지금까지와 달리 최신형 모델이었다. 뚱보 운전사는 이 버스는 뉴욕이 아니라 애틀란틱시티로 간다고 농담을 했다. 나는 그러면 더 좋죠라며 받아줬다. 교통 흐름은 좋았다. 11시 도착 예정 시간보다 15분 가량이나 앞당겨 뉴욕 포트 오서리티 터미널에 도착했다. 장원이형이 마침 근처에서 일하던 중이라 집까지 나를 태워줬다. 이렇게 집에 왔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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