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었습니다.
아침에 배달된 뉴욕타임스가 어쩐지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가만 들여다봤더니 제호(題號) 위에 녹색글씨로 “Today is Christmas! Remember the Neediest!(오늘은 크리스마스입니다! 진정 어려운 이들을 기억하세요!)”라고 써 있었습니다. 단 두 문장이었지만 어떤 요란한 캠페인보다도 묵직한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그날 뉴욕타임스 사설(社說)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지요. 4개의 사설 중 맨 아래 ‘A Life Turning Around’라는 제목의 글은 한 17세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됐습니다.
“열일곱 살이 된 제이(Jay)는 자신과 두 명의 어린 동생을 위해 두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이를 보호하기 위해 성은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제이는 열두 살 때 브루클린의 한 갱단에 강제로 가입했기 때문입니다.
갱단은 제이가 떠나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열다섯 살 때 학교가 라이벌 갱단에 의해 장악되자 제이는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이듬해 갱단 리더의 한 명이 도망치면서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지요. 제이는 두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정말 무서웠어요. 그들은 내 뒤를 패거리로 쫒아다녔어요.’
열여섯 살 때 제이는 청소년직업교육프로그램에 넘겨졌습니다. 브루클린 당국에서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은 ‘뉴욕타임스 Neediest Cases Fund(NCF)’가 지원하는 기관 중 하나로 고교과정 시험을 준비할 수 있고 다양한 연수프로그램을 통해 직업도 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지난 가을 NCF는 제이가 일을 하며 렌트비를 충당할 수 있게 했고 남는 시간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제이는 시험에서 충분한 점수를 받으면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여러분이 NCF에 기부하는 성금 전액은 ‘어린이 구호재단(CAS)’ 등 지역의 7개 자선기관에 전달됩니다. 부디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여러분의 정성을 모아주세요.”
뉴욕타임스 사설의 효과가 어떨지 알 수 없었지만 필경 아주 많은 성금이 답지했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평소 자선과 기부에 익숙한 미국인들을 아주 많이 봤기 때문이지요.
▲ 어느 추운날 맨해튼 5애버뉴에서 동냥을 하는 여성홈리스..배가 고프다고 써있다..
뉴욕타임스는 연말이면 매일같이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을 전하며 온정(溫情)을 호소합니다. 한국 신문들도 더러 이같은 캠페인을 전개하지만 뉴욕타임스처럼 이렇게 한달여 이상 가슴아픈 처지에 놓인 이들을 꾸준히 소개하는 일은 볼 수 없습니다.
지난 15일에 전한 조하나 캘버시 가족의 사연도 감동의 눈시울을 붉히게 합니다. 조하나(30)의 남편 에드가(40)는 얼마전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녀에겐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열두살짜리 딸 앤젤라 빌로타가 있습니다. 앤젤라는 네 살 때 암으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딸과 남편의 연이은 불행에도 그녀는 절망에 빠지는대신 담담히 현실을 받아 들였습니다. “모든 일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편 에드가는 에콰도르 출신 이민자로 2002년 조하나를 만났답니다.
생후 14개월만에 암이 발병한 딸을 안고 병원에 갔지만 영어를 못해 어려움을 겪다가 에드가의 도움을 받게 됐습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했지요. 앤젤라는 그후 시력을 잃었지만 새 아빠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으로 웃음을 되찾고 활기찬 소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9년 9월 또한번의 불행이 이들의 가정에 찾아들었습니다. 복통으로 병원에 실려간 에드가가 대장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수술을 받고 직장에 복귀했지만 재발해 2차 수술을 받았습니다. 암세포가 신장 등으로 전이돼 치료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조하나는 주급 500 달러를 받고 일하지만 남편의 요양연금을 합쳐도 가족 5명의 생계는 커녕, 한달 모기지 2694 달러에도 못미치는 상황입니다. 주택차압을 피하기 위해 대출로 급한 불을 껐지만 구호재단을 통해 월 전기세 417 달러를 지원받을만큼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에드가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궂은 날도 있으면 좋은 날도 있겠지요. 잘 될거에요.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뉴욕타임스는 기사와 함께 이날 현재까지 ‘니디스트 케이스 캠페인’으로 237만6578 달러가 모였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지난해 모금액수 264만2865 달러에 거의 근접한 액수입니다.
얼마전 저녁 동네의 수퍼마켓 앞에서 주차하고 있다가 자선냄비 모금을 하는 한 흑인 여성을 보았습니다. 산타 모자를 쓴 여성이 딸랑딸랑 종을 흔들었지만 날도 추웠고 한적한 동네의 수퍼마켓이라 쇼핑객도 별로 없어서 공연히 고생한다, 싶었지요.
그렇게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는데 슬그머니 미소가 퍼져나왔습니다. 놀랍게도 세사람 중 한 명 꼴로 냄비 안에 돈을 넣었기때문입니다.
맨해튼에도 거리 곳곳에 구세군의 자선냄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과 다른게 있다면 즐겁게 노래도 부르고 때로는 춤도 추며 행인들의 시선을 끕니다.
두명, 세명이 모여 캐롤송을 부르는 그들의 자선냄비엔 쉴 새 없이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갑니다.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흐뭇한 정경(情景)입니다.
마음이 넉넉해지는 십이월,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
뉴욕 : 
파리 : 
서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