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국불교계는 "미주전법 50주년"에 대한 분분한 의견들로 설왕설래가 진행중이다. 김형근 미주현대불교 사장은 1964년 서경보 스님의 도미를 미주한국불교의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으로 2014년인 올해가 50주년이 되는 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호응하여 미동부해외특별교구에서는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며 큰 규모의 지원을 본국에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미국 서부의 불교계에서는 개인적으로 유학을 목적으로 도미하셔서 사찰을 설립한 것도 아니고 미주한국불교계에 족적(足跡)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서경보 스님을 미주불교의 시발점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견해이다. 당당한 한국사찰이 미국땅에 개원된 시점을 미주불교의 출발점이라고 봐야 한다는 견해이다. 또 한편 송광사 주지와 한국불교 문화사업단장을 역임한 현고스님은 뉴욕 원각사 법회에서 미주한국불교의 기원은 뉴욕에서 원각사 설립 이전에 한인 신도들이 모여 법회를 하였던 시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법문한 바가 있다. 이처럼 미주한국불교의 시작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면 우선적으로 이러한 의견들을 수렴하여 미주 한국불교계 전체가 수긍할 수 있는 기준점을 확정하는 것이 합당한 순서가 아닐까 싶다.
행사는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특히 불교행사는 기념을 통해서 포교효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서경보스님 기원설(基源說)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이 시점에서 서경보스님의 도미를 기념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임팩트가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더군다나 행사준비위측은 조계종으로부터 행사 후원을 요청하고 있다는데 주인공인 서경보 스님은 1988년 조계종을 탈종하여 일붕선교종을 창종하신 분이다.
50주년의 시작을 서경보스님으로 잡았다면 기념행사는 필히 서경보스님에 관한 조명과 찬탄으로 채워질 것이다. 50주년이 그렇게 되었다면 60주년도 70주년도 그리고 100주년도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 헌데 서경보 스님은 미주한국불교의 의미 있는 출발점으로서 영원히 추앙받을 업적이 있는가? 현존하는 대다수의 미주한국불교 승가와 불교인들은 그것을 인정하는가?
서경보 스님은 유학생 신분으로 도미하셔서 템플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가신 학승으로서, 이번 사안과 관련하여 미주에서 활동하는 여러 한국스님들을 인터뷰해본 결과 서경보 스님을 미주 전법 1호로 받아들이기에는 어색하다는 것이 중론(衆論)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금까지 수렴된 의견에 따르면 미주에서 활동하는 여러 스님들이 미주한국불교의 시발점으로 삼고자 희망하는 분은 숭산스님이다. 숭산스님은 서경보 스님보다 몇 년 늦게 도미하셨지만 학생신분이 아닌 스님으로서 초청받아 도미하여 미국생활을 오롯이 포교에 바치셨다. 이같은 행적은 미주불교의 후예들에게 항구적인 가르침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숭산스님은 LA 최초의 한국사찰인 달마사, 뉴욕 최초의 한국사찰인 원각사와 조계사 그리고 시카고 최초의 한국사찰인 불타사(佛陀寺)를 창건하여 오늘날 미주한국불교의 틀을 완성하신 분이다. 미국의 3대 도시에 건립된 이 사찰들을 통하여 많은 스님들이 미국에 진출하였고 또 다른 여러 사찰들이 생겨났다. 현존하는 대다수의 미주불자들은 따라서 직간접적으로 숭산스님의 후예(後裔)들인 것이다.
숭산스님 www.ko.wikipedia.org
영어권 한국불교의 측면에서 역시 숭산스님의 업적은 독보적이다. 한국불교의 세계화의 원력보살로서 Kwan Um School of Zen이라는 선불교 종파를 창건하여 수많은 미국인 불자들을 양성하였고 미전역 그리고 전세계 수십 곳의 선원이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기리며 지금도 수행하고 있다.
미주한국불교의 출발점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점은 무엇인가? 미국에 도착한 선착순인가 아니면 미주한국불교사에서의 업적인가? 선착순을 기준으로 삼는다 해도 서경보 스님은 최초가 아니다. 그 이전에도 한국스님이 미국에 실존했었다는 기록과 증언이 있는데 주최측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서경보 스님 기원설을 받을고 있는지 모르겠다. 열반(涅槃)하신 서경보 스님도 이런 상황을 원하고 계신 것인지도 의문이다.
현재 미주한국불교의 90프로는 조계종이다. 미주불심의 저변에선 “도대체 조계종에서 왜 일붕종 스님을 기념하는 행사에 돈을 쓰나?” 라는 지적이 신도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서경보 스님을 생전부터 흠모했던 제자들과 신도들이 스승을 추모하고 기리는 뜻으로 그들의 정성을 모아 치루는 작은 행사가 아니고 조계종 해외특별교구에서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큰 행사이다. 미주불교의 역사와 미래를 가늠하는 이런 큰 행사를 기획하며 그에 합당한 의견수렴 절차가 없었음은 아쉬운 점이며 부작용도 염려되는 대목이다.
미주불교신문사는 미주한국불교사에 있어서 서경보 스님과 숭산스님의 위상을 각각 Visitor와 Founder로 정리하였다. 미국의 역사에도 콜롬부스가 유럽인으로 미대륙에 처음 도착한 뒤 수많은 탐험가와 방문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미국의 창건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늘날 미국의 출발은 Founding Fathers라고 불리는 영웅들이 독립정부를 세운 시점이다. 사찰건립이 미주한국불교의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보는 근거이다.
방문자와 창건자, 미주한국불교는 누구를 기리며 그 뜻을 이어갈 것인가. 다들 모여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
